지혜의뜨락 | 미스&미스터 트롯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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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9 11:58 조회4,93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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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스터 트롯에 빠지다
트롯 열풍
한동안은 트롯을 들으면 ‘아유 촌스러워’ 하며 취향이 저렴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트롯가수는 메인 무대에 설 기회도 없었고, 대중들의 환호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트롯가수는 음향 장비도 갖추어있지 않는 열악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지난해 미스트롯 방송을 한다는 예고를 했을 때도 ‘왜 저런 걸 하지?’ 하며 방송 프로그램의 실패를 예단했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뚜껑을 열자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생부부터 성인부 게다가 현역부까지 우리나라에 트롯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경연자들이 열과 성을 다해 트롯을 불렀다.
미스트롯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쭉쭉 상승했다. 현장의 관객들에게 실력있는 경연자에게 버튼을 누르라는 역할을 주자 수동적인 관객이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었는데 그것이 미스트롯 대중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PRPublic Relation에 불을 붙여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지게 하였다. 미스트롯은 ‘송가인’이라는 걸쭉한 가수를 탄생시켰고, 대한민국 사람들을 트롯에 빠지게 하였다. 음악에 관심이 없던 50~60세대들의 억눌린 낭만이 되살아났다. 촌스럽다고 외면했던 시절에 들었던 트롯을 자기도 모르게 응얼거리게 만들었다.
미스트롯의 성공으로 미스터트롯을 예상은 했지만 2020년 초부터 미스터트롯이 이렇게까지 강타를 날릴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트롯맨이 되기 위해 갖가지의 이유로 도전하여 무대에서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트롯이 얼마나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유소년부의 정동원군은 노래도 잘 하지만 13살 소년이 폐암에 걸린 할아버지와 살게 된 사연은 감동이라는 얄팍한 감정이 아니라 어린 소년이 그 삶의 무게를 이겨낸 의지에 어른들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부모 찬스를 이용해서 스펙을 쌓아야 성공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소년은 트롯가수가 꿈이기에 스스로 열심히 노력했고 그래서 미스터트롯에서 성인들을 누르고 자기 힘으로 승리를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미스터트롯이 아니였으면 결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보석들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미스&미스터 트롯의 성공 요인은 제작진과 경영자들의 트롯에 대한 사랑과 노력 때문이다. 트롯을 사랑하기에 당당히 응모했고, 트롯을 사랑하기에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제작진들은 트롯을 기존과 차별화된 모습으로 보여주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눈에 다 보인다. 그런 노력들이 관객과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단 한순간도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주는 위안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고 있으며 언제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을지 몰라 불안해한다. 이럴 때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는 것이 트롯이다.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쓰다듬어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이란 끈으로 이어주었다.
그저 트롯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소통하는 것이다. 부산에 살고 있는 큰언니가 안부 전화를 하면 요즘은 미스터트롯 얘기만 한다.
마스터들보다 더 예리하게 분석하며 누가 송가인과 대적할 최고의 진眞이 될 것인지를 예측한다. 형부와 자기는 1등 후보자가 달라서 내기를 걸었다며 신이 나있었다. 언니와 형부의 나이가 70대인 것을 보면 트롯의 낭만은 나이 제한이 없는 듯하다. 한 가정 뿐만이 아니라 기업에서도 트롯이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모 대기업 회장은 점심을 먹으며 ‘어제 미스터 트롯에서 봤는데’ 하며 얘기를 꺼내서 그 대화에 동참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서 프로그램을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불교음악이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음악은 청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며 인터넷으로 불교음악을 찾아 틀어놓고 일을 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력도 생긴다.
명상, 힐링 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두지 말고 그저 조용히 함께 하면 너무나도 편안하다. 종교음악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요즘의 종교음악은 집단적 의식과 체계 결집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타종교의 음악을 거부하게 만들지만 불교음악은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도 부담이 없다. 왜냐하면 불교음악은 사람을 위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불교음악의 선율이 은은히 내 가슴에 스며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