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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뜨락 | 세 가지 질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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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1-04 14:05 조회4,1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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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질문하기

 

<하루를 정리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물을 세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상냥했는가, 친절했는가, 할 일을 다했는가라는 질문인데요. 여러분들도 한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세요.

그러면 자기가 얼마나 무뚝뚝했는지 또 얼마나 불친절했는지 그리고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될 거예요. 이런 반성이 자기 자신을 상냥하고 친절하고 또 성실한 사람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방송 작가 일은 섭외가 반을 차지한다. 초보 방송작가 시절은 섭외에 실패하여 고생을 많이 했다. 방송 출연 날짜와 시간을 얘기하면서 출연해 주실 수 있는지를 묻는 방식이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언제 어느 때 나와라하고 출두 명령을 통보받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그분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좀 더 상냥한 목소리로 선생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방송 못해요라며 정중히 도움을 요청했다. 그 후 섭외 성공률이 쑥쑥 올라갔다. 그때 생긴 습관으로 나는 전화에 아주 친절하게 응대한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자기 기분에 따라 전화를 받는 태도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아주 친밀하게 대하면서 기분이 나쁠 때는 매우 성의 없이 대답하여 서둘러 전화를 끊게 된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전화는 서로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이기 때문에 더욱 상냥해야 한다.

그리고 친절이 요구되는 곳은 엘리베이터이다. 문이 열려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할 때 공간을 확보해 주려고 한쪽으로 비켜주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특히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양쪽으로 비켜주어야 휠체어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꼼짝도 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인에게 엘리베이터는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것이지만 장애인에게 엘리베이터는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심지어 장애인 마크가 붙어있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조차도 일반인 차지이다. 엘리베이터만이라고 장애인에게 양보하는 친절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일상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이용하게 되는 것이 전화와 엘리베이터인데 이때만큼이라도 상냥하고 친절하다면 큰 힘들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꼭 해야 할 또 한 가지 질문, 할 일을 다했는가에 대해서는 나도 늘 자신이 없다.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 후회가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늘 할 일을 조금씩 남겨놓고 하루를 마감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꿈에서도 원고를 쓴다.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성실할 수 있다. 그래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나를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할 일이란 사람의 도리를 다 했는가일 것이다.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보았나?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 일은 없을까? 내가 소속돼있는 조직에 최선을 다했나? 우리 사회 어려운 분들에게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꼭 해야 일들이 많은데 그것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지나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상냥했는가?, 친절했는가?, 할 일을 다했는가?’이 세 가지 질문을 매일 하라는 것은 하루를 돌아보며 자기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반성하면서 더 멋있게 자신을 발전시키라는 뜻이다.

 

그래서 미국 불교학자 데이비드 로이가 불교의 개인적 자아와 집단적 자아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 개인과 사회는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란 주장이다. 따라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행동하는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성하며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며 누구에게나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참다운 불자가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