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뜨락 | 그럴 수도 있지, 불교의 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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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2-02 12:56 조회4,31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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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럴 수도 있는 일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또 자신도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일을 했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한결 따뜻한 기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럴 수도 있는 일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또 자신도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일을 했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한결 따뜻한 기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를 하자고 들면 이해 못 할 일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사람은 다 자기 입장에서 해석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오해와 피해를 줄 때가 있다. 자기가 봤을 때는 당연한데 왜 상대방은 기분 언짢아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작은 일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여러 명이 같이 있을 때는 그 분위기에 맞게 맞춰주는 것이 예의다. 하지만 기분이 상했다고 금방 표시를 내고 쌜죽해져서 사람들이 신경 쓰게 만든다면 성숙하지 못한 태도이다.
전체를 위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얼마든지 이런 일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고 말하면 사과를 받아낼 수 있다.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인데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그 즉석에서 화부터 내서 분위기를 망쳐놓는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나이도 젊은 사람이 명령을 해, 지가 팀장이면 팀장이지 말이야’ 하면서 나이대접을 해주지 않은 것을 꼬갑게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자기가 상사가 됐다면 자기는 그보다 더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나이든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한탄하지만 어차피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먼저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 장애가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제는 한 가지가 더 늘었다. 나이가 단점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 나한테 더 엄격해졌다. 그러면서 남한테는 너그러워져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기로 하였다.
이런 여유는 불교의 관용과 포용으로 가질 수 있다. 불교의 자비, 무집착, 방편은 타인에 대한 관용 내지 포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비는 타인에 대한 포용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비는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를 실천한다. 현재도 배려를 하고는 있지만 포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배려는 하나의 에티켓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비심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불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집착이다. 집착을 하면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집착을 하지 않는 무집착은 타인을 배려하는 포용으로 나타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자기 집착이 너무 심각하다. 정치인들의 싸움은 바로 이 자기 집착에서 생긴 것이다.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이 관용과 포용이다. 자기 것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라는 관용으로 포용하면서 진심으로 모든 국민을 위해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 실천해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끝으로 방편은 환경상의 개성 즉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타인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것으로 자비와 무집착은 관용과 포용의 개념적 사상이고, 방편은 실천적 방안이다.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려면 방편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방편은 처해있는 환경적 조건을 다양성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장애인 차량이 아닌 일반 차량을 주차하여 시비가 벌어질 때가 있다. 주차 공간이 없어서 돌고 돌다가 장애인 주차구역이 비어있어서 잠시 세운 것인데 ‘여기 세우면 안 된다.’라고 알려주었는데 ‘장애인이 무슨 벼슬이냐고’ 비꼬아서 날카롭게 부딪힐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서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 번씩 관대하게 포용해 준다면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코로나19로 각박해진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불교적 관용과 포용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