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신 거꾸로 신은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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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1-04 14:04 조회4,39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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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거꾸로 신은 부처님
오랜만에 학교 옆 소나무 숲으로 아침 운동을 나갔다. 추석이다 한글날이다 해서 줄줄이 이어지는 연휴에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던 터라 잠깐이라도 몸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날, 그들을 보게 된 것이다. 허리 굽은 늙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느린 걸음에 맞춰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 중년의 아들을.
내가 그들을 처음 본 것은 4~5년 전쯤. 바로 그 소나무 숲에서였다. 아침마다 여섯시 반에 일어나 한 시간쯤 숲을 걷고 들어와 출근을 하던 때였다. 커다란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그곳은 숲의 싱그러운 향기와 부드러운 흙, 골고루 갖추어진 여러 가지 운동기구까지 있어서 가벼운 산책은 물론 적당한 체력 단련까지 가능해서 하루 종일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아침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리기를 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는데, 젊은이들이 숲을 대여섯 바퀴 도는 동안에도, 내가 서너 바퀴 도는 동안에도 한 바퀴도 채우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그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그들 부자가 눈에 띈 것은 느린 걸음도 걸음이려니와 허리가 90도도 넘게 굽은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듯 위태롭게 몇 걸음 걷다가 멈추고, 또 그렇게 몇 번 걷다가 소나무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고…. 여든을 훌쩍 넘겼음직한 아버지의 모습이 이만저만 힘들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몰아세우는 아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효자인 척하는 것은 아닐까 살짝 의심도 들었다.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강도가 너무 셌다. 하지만 아들은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그날이 그날인 듯 변함없이, 한 번도 앞서는 법 없이 더 느린 걸음으로 아버지의 뒤를 따르다가 멈추곤 했다. 아버지가 소나무에 기대어 숨을 고르거나 벤치에 앉아 잠시 쉴 때면 땀을 닦아 드리거나 다리를 주물러 드리곤 했다. 투박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나보다 늦거나 일찍 다녀갔으려니 했는데 한 달 두 달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생각은 안타까운 쪽으로 굳어졌다. 연세가 있으니, 그리고 건강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 아마도 세상을 떠나신 모양이다, 그렇게.
그즈음 나 역시 예기치 않게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뒷정리로 경황이 없기도 했을 뿐 아니라 정작 시간이 많아지고 나니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자꾸 게을러져서 헬스클럽 신세를 지게 됐고, 소나무 숲과도 멀어지게 됐다. 그게 2년 전, 그러니까 그들 부자를 다시 만나게 된 건 2년도 훨씬 더 지난 후가 되는 셈이다.
앞선 사람이 걸으면 뒤선 사람도 따라 걷고, 앞선 사람이 멈추어 서면 따라 뒤선 사람도 멈추고… 느릿느릿 그러나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익숙한 모습을 보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뒤를 따르는 아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짐작조차 못했으리라. 앞선 사람의 연두색 점퍼가 너무도 화사했고, 엉거주춤 하긴 했지만 제법 꼿꼿하게 펴진 허리가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하지만 부자 증명이라도 하듯 유난히 굵은 쌍꺼풀을 가졌던 그 아버지와 그 아들이 분명했다.
놀랍고 반가워서 인사를 건네니 그쪽에서 오히려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며 웃는다. 그동안 허리 수술을 했는데 회복도 느리고 재활도 힘들어서 1년 넘게 고생 고생하다가 지난해 가을에야 겨우 바깥출입을 하게 됐다고, 우리 아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시켜준 덕에 이제는 이렇게 펄펄 날아다닌다고…. 결코 펄펄 날아다니지 못하는 아버지가 굽은 허리를 애써 펴면서, 쑥스러움에 먼산바라기를 하고 서있는 아들 자랑에 침이 마른다.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진 건 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풍수지탄風樹之歎,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자 때늦은 후회이기도 했다.
문득 <신 거꾸로 신은 부처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일찍이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어린 외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길렀더란다.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긴 아들은 저만 아는 불효자가 되었고, 어머니가 고생고생해서 마련한 논밭을 팔아 사업 밑천을 마련해 대처로 나갔건만…. 손대는 일마다 망하게 된 아들이 막판에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돌아가서 신 거꾸로 신은 부처님만 잘 위하면 운수 대통하겠소.”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이름난 절을 모두 찾아다니며 신 거꾸로 신은 부처를 찾았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알거지 신세가 된 아들이 어쩔 수 없이 고향집을 찾아가 한밤중에 문을 두드렸더니 어머니가 한 걸음에 달려 나와 아들을 얼싸안으며 “네가 살아왔구나. 얼마나 고생 많았니? 배고프겠다.” 하면서 아들에게 밥상을 차려 주기 위해 허둥지둥 부엌으로 달려가는데, 그때 비로소 아들의 눈에 신을 거꾸로 신은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신 거꾸로 신은 부처님이 어머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어머니를 부처님 모시듯 효성을 다하자 말 그대로 운수 대통, 만사형통하게 됐다는….
불교의 궁극적 이상에 대해 사전에서는 ‘세상의 고통과 번뇌를 벗어나 그로부터 해탈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음은 물론이요, 세속과의 인연조차도 끊는다. 하지만 ‘나를 낳아 고생하며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혜 보답하려 하나 길이 없다.’라는 간절한 말처럼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효성을 다해야 한다고 이르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같은 특별한 경전도 있으니 이참에 효심孝心이 곧 불심佛心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기로 한다.
염불은 모든 법法 중의 제일이요, 효도는 백 가지 행行의 으뜸이다.
효심이 곧 불심이며, 효행이 곧 불행佛行인 것이다.
부처님과 같아지려면 누구든 반드시 부모에 효도해야 한다.
효의 첫 번째는 부모님의 의식주를 돌보아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부모님을 부처님 대하듯 하는 것이다.
부모가 늙어 기력이 약해지면 의지할 사람은 자식밖에 없다.
아침저녁으로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과 잠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즐겁게 말상대를 해 드림으로써 노년의 쓸쓸함을 덜어 드려야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하늘처럼 공경하고 예배하라.
부모를 왕위에 나아가게 한다 해도 그 은혜는 다 갚지 못한다.
불가에서 이르는 부모는 ‘목숨이 있는 동안은 자식의 몸을 대신하기 바라고, 죽은 뒤에는 자식의 몸을 지키기 바라는’ 존재다. 그래서 신 거꾸로 신은 부처를 가진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