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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야기 | 이 도시의 주인은 누구일까? - 피튜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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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2-29 14:30 조회4,3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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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주인은 누구일까?

피튜니아 Common garden petunia

 

 

우리가 훨씬 먼저 태어났거든!

도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최대한 불편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얻기 위해 지금도 이곳저곳에서는 쉴 새 없이 땅을 파헤치고 인위적인 무엇을 만듭니다.

 

그런데 도시에는 사람만 사는 게 아닙니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생명체가 사람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의 사랑을 받는 동물도 있고, 바퀴벌레나 쥐처럼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동물도 있습니다. 가로수나 화단의 꽃처럼 사람의 손길을 받는 식물도 있고, 보도블럭 사이의 잡초나 이끼처럼 지나가는 발길에 밟히는 식물도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하듯 이 생명체들 또한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정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가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기준으로 편을 가릅니다. 이 생명은 보호할 대상이고 이 생명은 없애야 할 대상이라고 맘대로 정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의 형태를 지구의 터줏대감인 바퀴벌레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제 막 지구에 나타난 것들이 까불고 있어.’ 아마 가소롭다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릅니다.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원예 품종

본격적인 더위를 앞뒤고 심호흡을 하는 6월이 되면 도시는 온통 피튜니아 잔치입니다. 집 근처 학교의 아담한 꽃밭부터 도로변 가로등에 매달린 화분까지 어디를 가더라고 피튜니아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피튜니아는 가지과 식물로 남아메리카가 고향입니다. ‘Petunia’라는 이름은 남아메리카에 살던 원주민의 언어 ‘Petun(담배)’에서 유래했는데, 피튜니아 꽃이 담배꽃과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원주민들이 담배를 피울 때 피튜니아 잎을 섞어 피워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지요.

 

하지만 이름의 유래에서 느껴지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취와는 달리 지금 우리가 보는 피튜니아는 그저 도시의 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몇 종류의 원종을 수없이 개량하고 또 개량해 만든 원예품종일 뿐입니다. 피튜니아의 원예품종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꽃의 크기만 하더라도 지름이 13cm나 되는 것부터 5cm밖에 안 되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꽃 색깔도 우리에게 익숙한 빨강, 분홍을 비롯해서 파랑, 보라, 하양, 노랑, 그리고 한 꽃에 두 가지 색이 번갈아 줄무늬를 이루는 것까지 여러 가지입니다.

 

꽃 모양 또한 모두 똑같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대개 홑겹이지만, 겹으로 된 품종도 있습니다. 겹꽃 피튜니아의 경우, 얼핏 보면 피튜니아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 겹꽃 피튜니아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우리에게는 씨 없는 수박으로 널리 알려진 우장춘 박사입니다.

 

도시는 우리가 지킨다

얼마 전 여의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는데 무엇보다 피튜니아가 가장 먼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피튜니아는 제가 서 있는 곳부터 저 멀리 제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차도를 따라 아주 길게 심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좀 더 자세히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피튜니아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피튜니아를 살펴보고 있자니 아주 조그맣게 속삭이는 피튜니아의 음성이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친구야! 너는 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 같니?”

글쎄, 뭐 사람들이 여기에 심었으니까 있는 거 아냐?”

그러자 피튜니아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물론 너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실은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곳에 심도록 한 거야. 바로 우리의 사명감 때문이지.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 도시의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일, 그게 바로 우리의 임무야.”

 

저는 이제껏 피튜니아가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에 하루하루 괴로워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튜니아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던 거지요.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자신들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피튜니아는 그들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의 숨결이 피튜니아에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저는 피튜니아로 뒤덮인 도시의 한때를 보내면서 과연 인간이 이곳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게 옳은 일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아주 잠시라도 피튜니아에게 도시를 맡겨 보고 싶어졌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도시의 으뜸인 양 으스대고 있지만, 피튜니아 말로 인간과는 달리 잘난 체도 않고 뽐내지도 않으면서 그저 묵묵하게 도시를 지켜 줄 것만 같았습니다.

 

만일 피튜니아에게 도시를 맡겼더니 이곳이 인간이 주인일 때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뀐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때는 정말 피튜니아에게 영원히 도시를 맡기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우리의 삶터가 더는 망가지기 전에 말이죠.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피튜니아 같은 식물 따위에게 이 도시를 못 맡기겠다면? 어쩔 수 없지요. 피튜니아를 스승 삼아 사명감과 책임감만큼은 반드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