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라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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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8-31 21:15 조회3,86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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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나이를 먹을수록 눈이 나빠지고 귀가 어두워지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그만큼 더 많아지기 때문에 못 본 체, 못 들은 체하라는 신의 섭리라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슬쩍 눈감아 주고 거슬리더라도 그냥 눙치고 넘어가야 구세대와 신세대가, 부모와 자식 사이가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십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백세시대라 지나치게 눈 밝고 귀 밝아 그런가, 이론은 아는데 실천은 되지 않는 부작용이 속출한다.
어쩐 일인지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안 돼’가 없다. 아이가 무언가를 사달라거나 해달라고 하면 말로는 안 된다고 하다가도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떼쓰는 강도를 높이면(어떤 아이들은 바닥에 드러눕기도 한다) 사태는 급반전! 부모들은 아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을 빼면서 아이가 요구하는 대로 무얼 사다가 바치고 무얼 해 주느라 전전긍긍이다. 귀한 아이를 울리다니! 어떤 원칙도 기준도 없이 무조건이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마치 사랑의 전부인 양,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혀 짧은 소리까지 내가면서 죄인 자처하는 모양새라니….
이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들 가족의 집에는 십중팔구 ㄱ ㄴ ㄷ ㄹ도 아닌 A B C D 가득한 포스터와 빵 대신 Bakery, 사과 대신 Apple, 하나 둘 셋 대신 one two three가 쓰인 그림책이 넘쳐났을 게 뻔하다. 이들 부모는 비싸고 좋은 분유와 유기농 이유식 찾기에 골몰했을 것이고, 고급스럽고 예쁜 옷이며 두뇌 발달에 좋다는 온갖 장난감과 놀이기구를 아낌없이 사들였을 것이다.
아이가 1분 1초라도 울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미리미리 알아서 척척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 주고, 거기에 정신 팔린 아이에게 삼시 세끼 밥을 떠먹인다. 행여 아이가 숟가락을 내치기라도 하면 맛이 없느냐 무얼 해 주라느냐 안달복달 통사정이 마치 대역 죄인의 읍소처럼 간절하다 못해 비굴하기까지….
어쩐 일인지 요즘 젊은 부모들 중에는 염치없는 이들이 참 많다. 내리사랑이 만고불변의 원칙이라지만 아이 사랑이 차고 넘치는 데 비해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님에 대한 관심은 함량 미달인 경우가 허다하다. 1++ 한우도, 고당도 최상급 과일도, 프리미엄급 아이스크림도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삼겹살이나 제철 과일도 감지덕지인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서 아이는 너무도 당연하게 혼자, 맛있게, 그것을 받아먹는다. 젊은 부모에겐 잘 먹는 아이가 기특하고 잘 먹이는 자신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님이 기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눈에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도 아이가 원하면 엄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노래하며 춤을 춘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든 누구 앞이든 아이의 한 마디가 떨어지면 아빠는 아이와 뛰고 뒹군다. 아이에게 말을 시켜 보고 싶은 누군가가 뭘 물으면 아이가 입을 뗄 겨를도 없이 엄마와 아빠가 앞다투어 대답을 한다. 아이 스스로 해야 할 일도 부모가 나서서 챙겨 주고, 할 수 있는 일조차도 부모가 미리미리 해결해 주니 아이는 그야말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만사형통이다.
어쩐 일인지 요즘 젊은 부모들은 감사나 배려, 양보와는 그리 친해 보이지 않는다. 부족한 친구와는 함께 놀지 말라고, 싸움을 할 때는 절대로 맞지 말고 한 대라도 더 때리라고 조기교육(!)에 열을 올린다. 내 아이가 잘못한 건 어린 탓이라며 감싸고, 남의 아이가 잘못한 건 못돼서 그런 것이니 혼쭐을 내야 한다면서 팔을 걷어붙이기도 한다. 2등은 없다. 다른 아이보다 잘나고 똑똑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아이의 기를 죽이는 건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아이에게 남보다 먼저 남보다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아이가 남보다 빨리 남보다 더 훌륭한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부모는 때때로 얼굴에 철판을 깔기도 한다.
아이에게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의 한없는 욕심이 내 탓 아닌 네 탓으로 이어진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은 까마득히 잊은 채, 화수분이 되어 주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눈덩이처럼 굴리고 또 굴린다. 누구네 자식처럼 생활비를 보태는 것도 아니면서 누구네 부모님은 집을 사줬다네, 누구네 자식처럼 따뜻한 안부전화 한 통 없으면서 누구네 부모님은 현금 뭉치를 안겨 줬다네 하면서 못 해줘서 마음 아픈 부모님의 염장을 마구 질러댄다.
비싼 외제 유아용품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우리나라 제품도 그에 못지않은 게 얼마든지 있다고 말해 보라. 우유보다 모유가 백번 낫고, 사 먹이는 이유식보다 직접 만들어 먹이는 이유식이 좋다고 말해 보라. 편식도 습관이 되니 골고루 먹이라고 말해 보라. 적당한 시기가 되면 밥도 떠먹게 하고 배변 훈련도 시키라고 말해 보라.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해 보라. 친구와 나누고 양보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말해 보라.
“라떼는…”이라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인터넷에 보니까요…, 조리원 동기들이 그러는데요…, 요즘 누가 그렇게 해요…라는 말이 빛의 속도로 되돌아올 것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기 십상이다.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부득부득 한 마디 하자. 부모에게만 예쁜 아이가 아니라 남에게도 예쁜 아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되짚어 보는 “라떼는 말이야…!”가 허튼 잔소리가 되지 않으리라는 얄팍한 믿음으로.
아이 하나를 온 동네가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넉넉한 것보다 모자라는 게 더 많았던 그때,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볼 것도 들을 것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아이들은 1등을 다투지 않았고, 1등이 아니었어도 행복했다. 개구쟁이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어른들의 응원 속에 아이들은 너른 들판을 뛰어다니며 온 마음으로 산과 강, 하늘을 품었다. 고사리 손으로 동생을 돌보고 밥을 지었고 여린 어깨로 지게를 지고 꼴을 베었다.
가난한 밥상은 자식의 그릇에 밥을 덜어 주던 아버지, 끓인 누룽지로 끼니를 때우던 어머니 덕분에 더없는 풍요로움으로 아이들을 쑥쑥 자라게 했다. 이름 있는 과일은 귀한 몸이라 아이들은 일찌감치 산과 들을 누비며 더불어 함께 자급자족을 익혔다. 봄이면 칡뿌리ㆍ잔대ㆍ찔레 순, 여름이면 오디ㆍ산딸기ㆍ보리수, 가을이면 밤ㆍ머루ㆍ다래ㆍ개암을 찾아 산과 들을 쏘다니는 동안 다리가 튼튼해지는 만큼 아이들의 마음도 단단해졌다.
규칙이 가르쳐 주는 것은 책임감이다. 제재는 이기적인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배려는 존중으로 이어진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크게 잘못된 후에 바로잡으려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사랑이 너무 크고 깊어서 오히려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놓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때가 되어서야 행하는 노력은 할 일을 다 하지 못한다. 미리 기울이는 노력이야말로 할 일을 다 한다.『밀린다왕문경』’라는 말씀이 부디 입에 쓴 약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