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바루기 | 마니(MAṆ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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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7-06 23:02 조회4,01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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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MAṆI)
마니(MAṆI)는 제일물질로서의 마음의 보주(寶珠)이자 서양의 연금술에서의 ‘현자의 돌’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연금술의 신비적 언어에서 수은은 제1물질[prima materia]과 동일시된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학파가 주창하는 地·水·火·風의 4원소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드러난 물질계가 나타내는 여러 자질로부터 해방되어 있다.
이들 4원소, 즉 근원적 자질[마하바투, mahābhūta]은 불교도에게 고체, 액체, 기체 및 발열의 원리로 잘 알려져 있다. 디가니까야 「견고경(堅固經)」에서는 한 비구가 “세존이시여, 이제 이 지․수․화․풍 사대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소멸합니까?”라는 미지의 문제를 묻고 있다. 이는 사대(四大)가 무엇에 기반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비구여, 이 문제는 그런 식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원소가 어떤 발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어디냐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보이지 않는, 무한한, 모든 것이 빛나는 의식의 속이다(viññāṇam anidassanam anantaṃ sabbato pabham). 지도 수도 화도 풍도 발판을 찾을 수 없다(ettha āpo ca pațhavi tejo vāyo na gādhati).”
아니다싸남anidassanam(눈에 보이지 않고, 감지할 수 없다)이라는 말은 의식이 식별되거나 객관화될 때, 눈에 보이는 양상으로 나아가 스스로를 구현하고 물질적 형체로 응고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물질적 형체를 신체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것은 과거 의식의 가시적인 표현, 즉 선행 의식의 형체창조적상태의 결과(위빠까, vipāka)이다.
그러므로 윈냐낭 아니닷사낭viññāṇam anidassanam(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이란 아직 혹은 더 이상 주관과 객관의 이원성으로 분열되지 않은, 나누어져 있지 않은 순수성에 있는 의식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는 이 의식이 열반과 동일시할 수 있다고 언명한다. 아난땅anantaṃ(무한한)이라는 말 속에는 의식이 대상에 의해 한정되지 않았을 때, 즉 자아와 비아의 이원성을 극복했을 때에만 무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상태의 의식의 순수성은 또한 삽바또 빠방sabbato pabhaṃ의 표현에 의해 강조된다. 즉, 모든 방향으로 빛을 발하고 빛[bodhi: 보리]과 함께 모든 사물에 침투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깨달음(sambodhi)’ 상태에 있는 의식이다.
부처님이 <우다나: UdānaⅧ>에서 ‘실로 고체도 액체도, 열도 운동도, 이 세상도 다른 어떤 세상도, 태양도 달도 없는 영역이 있다. 오 비구들이여 불생(不生), 무시(無始), 비창조(非創造), 비형성(非形成)이 있다. 만약 이 불생, 무시, 비창조, 비형성이 없다면 탄생, 창시, 창조, 형성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자야말로 진정으로 ‘현자의 돌’ 즉, 값진 보주(寶珠, maṇi)를, 즉 인간 정신의, 아니 어떤 생명 형체를 취하고 나타나든, 의식의 작용 그 자체의 제1물질[prima materia]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