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위드다르마 연재글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죽비소리 | 환지본처(還至本處)에서 만납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5-13 15:16 조회3,792회

본문

환지본처(還至本處)에서 만납시다

 

전화위복이라 말하지만 인과(因果)의 필연적 흐름일 뿐

초심(初心)의 자세 견지하면 외골수로 접어들지는 않아

 

1년이 조금 넘는 지방 파견 생활을 마치고 본사로 복귀했을 때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탁발하러 마을에 들어갔다가 수행처로 다시 돌아오는 금강경 첫머리의 장면을 떠올리며 먼 길 수행 떠나갔다가 잘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는 뜻도 있겠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며 새로운 앞날을 설계하는 순간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지방 파견 시절의 부끄러운 경험 한 가지를 내놓아 보려 합니다. 제가 아는 출판사 대표님이 계십니다. 그 대표님이 존경하는 어느 스님을 저도 존경하기에 자연스레 저는 그 분이 잘되기를 바랐지요. 좋은 인연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대표님이 저를 힘들게 하던 분의 책을 출간할 예정임을 알고 나서는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잘되기만을 바라던 출판사 대표님을 마냥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잘 들지 않는 거였습니다. 대표님을 봐서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묘한 인연에 부딪히면서 저는 저를 힘들게 하던 분을 미워할 수만은 없겠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연관계를 모르고 상대를 단독적인 개체로만 볼 때는 밉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중중무진으로 서로 돕고 사는 인연관계를 알수록 그럴 수가 없겠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부처님 가르침처럼 세월이 흘러 저를 괴롭히던 그 분도 소임이 바뀌면서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참으로 기이한 일이 펼쳐지더군요. 저를 측은하게 여기던 주위 분들이 저를 더 위로하고 격려해주게 되었으니까요. 저를 힘들게 한 것이 역설적이게도 저를 도와준 셈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힘들게 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일 필요가 처음부터 없었던 겁니다. 모든 게 그때 그때 인연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겸허히 수용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인연에 따른 현상들은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한 때 숭상되던 가치도 시대가 변하면 다른 가치에 자리를 내주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물밀듯하던 이데올로기들은 한순간 꿈처럼 사라졌고 절대적인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던 과학적 지식들도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가 불가피했습니다. 설사 어떤 것이 보편성을 획득한 듯싶어도 그것은 특정한 상황과 맥락 혹은 조건 속에서 이뤄진 것일 뿐 훗날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조금만 더 넓게 깊게 길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따져보면 단편적인 결론을 만들어내서 과신할 수 없는데도 일상의 우리는 너무도 쉽게 결론을 내고 마치 진리인 양 믿고 집착하기 일쑤입니다. 나아가 편을 갈라 대결하고 갈등하곤 하는 중생의 삶입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화가 오히려 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잘 모르는 경우엔 화가 복이 된다고 하겠지만 잘 알게 되면 인과(因果)의 필연적인 흐름일 뿐일 것입니다. 화가 단순한 화가 아니었던 한 때의 인연이었던 것입니다. 불교 인과설의 근본 취지는 복된 원인을 지어서 복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복이 되고 화가 되는지 잘 알아서 화라고 단순히 피하지도 말고 꾸준히 복을 심고 가꿔 나가야 합니다.

 

지혜는 한 사람의 수행정진의 결과로 얻을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의 수행정진 결과를 갈무리한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궁구하고 또 궁구하여 철저히 깨우친다면 영겁불망의 지혜가 되겠지만 그 밖의 다양한 깨우침은 집단지성의 도움을 받으면 더 쉽고 빠르게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선지식과 도반이 있습니다. 그러한 관계망에 연결되면 공부하기가 수월하겠지요. 공부 내용을 늘 점검하는 초심(初心)의 열린 자세를 견지한다면 자기만의 외골수 같은 길로 접어들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본래 자리, 환지본처에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