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위드다르마 연재글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지혜의뜨락 | 나는 누구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1-27 13:27 조회4,199회

본문

나는 누구인가?

 

가수 박진영이 인생을 이야기하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사람은 태어난 것이 시작이면 죽음은 끝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를 생각하게 된다고 하자, 사회자 유재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기는 그저 오늘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다.’고 하였다. 나도 그동안 오늘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의 길이를 재보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생애주기별로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서 우리 인생에도 유통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나중에는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텐데 싶어 새삼 일에 대한 귀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일이 소중해서 열심히 한 것이 아니고, 일을 통해 성공을 일구어내려는 욕심에 최선을 다했다. 단 한단계라도 올라가야 자존감이 생겼다. 멈춰있는 것은 퇴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라가기 위한 길을 찾느라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희망과 열망을 갖고 있으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거절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또 다시 희망을 갖고 다시 도전하였다. 그것을 나는 열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는 욕심이 많았다. 내가 속해있는 분야에서 내가 제일 잘 한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편견이니 차별이니 하고 사회 탓만 했다.

 

인생은 올라가는 길만 있는 줄 알았기에 내려가라고 하면 그것을 수용하지 못해 분노하고 좌절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내려가는 길도 내가 거쳐야 할 길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안전하게 그러면서도 추하지 않게 내려오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나를 수식하고 있던 직함을 절대로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어떤 지위에 있었다는 것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은 구걸이나 다름이 없는 행위이다.

 

나는 인생 유통기간이 지나기 전에 나의 정체성을 미리 정해놓기로 하였다. 우선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예전에는 건강하게 잘살자는 웰빙(well being)이 화두였다면 요즘은 웰다잉(well dying) 즉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자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진자로 사망한 사람들이 냉동 트럭에 실려 와 한꺼번에 매장당하는 미국 뉴스를 보면서 그리고 장례식도 없이 서둘러 화장을 하고 가족들조차도 접근이 안 되는 우리나라 코로나 확진자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웰다잉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유통기간이 지난 물건은 아무리 좋은 브랜드여도 못 쓸 물건 취급을 하지만 나이가 들어 사회 활동을 못 한다고 해서 유통기간이 지난 물건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시기가 웰다잉을 위해 품위 있는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카운슬러나 우리 사회를 위해 영향을 미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현대 서양인들이 불교에 심취하는 것은 바로 불교의 죽음관이 아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열반이라고 하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식()은 안.....(, , , , , )6식이고 제 7말라식은 잠재의식이며, 8아라야(alaya)식은 무의식으로 열반은 제 8아라야식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았다. 죽음으로 육체는 소멸되지만 제 8아라야식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는데 다시 시작하는 조건이 살아있는 동안의 행동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불교에서의 죽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깨달게 해준다. 따라서 죽음을 먼저 생각해야 올바른 삶을 살게 되고, 해탈이라는 존엄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느라고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지, 자신의 죽음은 존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이 잠시 멈추자 이제야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이제 제2의 정체성 찾기에 좀 더 몰두할 생각이다. 1의 정체성이 온갖 간판으로 채워져 있었다면 제2의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새롭게 발견한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