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 | 잠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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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2-02 12:55 조회4,27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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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홀로 일곱 살 난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입니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다가 다쳐서 들어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죽은 아내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가슴에서 바람소리가 난다는 사람…
그가 아이를 두고 멀리 출장을 가야 했던 날의 일입니다. 그는 기차 시간에 쫓겨 아이의 아침밥도 챙겨 먹이지 못하고 허둥지둥 집을 나섰습니다.
밥은 먹었을까? 울고 있진 않을까?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도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았습니다. 그는 출장지에서도 자주 전화를 걸었고 아들은 그때마다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제법 철든 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서 일을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거실 소파에서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허~ 녀석,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네.” 잠에 취한 아이를 제 방에 눕힌 뒤 안도감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맥이 탁 풀린 그는 잠자리에 누우려다 말고 깜짝 놀랐습니다. 침대 위에는 퉁퉁 불어터진 컵라면이 이불 밑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이 녀석이!” 그는 화가 나서 아들의 방으로 걸어 들어가 다짜고짜 잠든 아들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렸습니다.
“너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하니, 이불은 누가 빨라고 이런 장난을 치냔 말이야!”
아내가 떠난 후 아이한테 매를 댄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아이가 볼멘소리로 말했습니다. “장난친 거 아냐. 이건 아빠 저녁밥이란 말이에요” 아빠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컵라면 두 개를 끓인 뒤 하나는 먹고, 아빠 몫은 식을까봐 이불 밑에 넣어 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만 할 말을 잃고 울먹이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국물은 죄 쏟아지고 반쯤 남아 퉁퉁 불어터진 라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中>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라날 어린 아들에 대한 대견함과 뭉클함, 안쓰러움, 아버지의 무거운 책임감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이유도 묻지 않고 대뜸 매를 든 아버지에게 원망 아닌 원망의 소리를 내었지만, 내가 글 밖 독자의 입장이 아닌 글 속의 아버지 입장이었어도 지금과 같이 아이에게 왜 그랬는지 먼저 물어봤어야지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어떠한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먼저 알려고 하기보다 이미 내 생각으로 그 사람과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정의 내리곤 한다.
요즘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함에 있어, 나와 견해가 다를 때 잠깐의 시간을 두고 상대의 말과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 후 그에 따른 나의 입장을 정리하여 대화를 나누려 노력한다. 그 잠깐 동안의 시간이 나의 말실수, 혹은 상대와의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잠시면 된다.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만 나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행동해라. 내가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그 생각은 맞는 것인지, 또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취하려는 행동이 옳은 일인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는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주 잠시 잠깐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정도의 시간이면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뿐만 아니라 잠시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것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고민거리와 힘든 상황에 대해 잠시간 모든 행동을 멈추고 잔잔하게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아라. 그것만으로도 나의 복잡했던 마음과 생각이 정리됨을 느낄 것이다. 그 잠깐의 시간도 통하지 않을 때는 마치 이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나의 감정과 생각을 배제하고 상황과 나를 분리하여 전체적으로 바라보아라. 이전에 없던 명확한 답이 그대를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나의 고민과 생각이 나를 계속하여 짓누른다면 잠시 일상을 벗어나 떠나라.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산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았을 때 지금까지 내가 했던 수많은 고민들, 걱정들이 이 큰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적이… 나는 그랬다. 산 아래 펼쳐진 도심 속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치 한 마리의 개미처럼 더없이 작아보였고 그 자연 속에서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걱정과 고민들이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었다. 꼭 산으로 떠나라는 말이 아니다. 나의 걱정과 고민거리가 있는 곳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환기가 될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베풀 마음도 생긴다는 것이다. 위 글 속 아버지에겐 여유가 없었다. 아내가 죽고 난 후 홀로 어린 아들을 키워야 했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따뜻하라고 이불 안에 넣어둔 컵라면을 보고 아들이 그렇게 행동했을 이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 없이 자고 있던 아들에게 매를 들었을 것이다.
잠시 동안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컴퓨터도 PC정리를 해주어야 원활하게 작동되듯, 사람 또한 머릿속에 쌓인 여러 가지 생각들과 이러한 생각들에 동반되는 감정들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야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다. 매 순간순간 잠시간의 생각할 시간, 혹은 쉴 수 있는 시간 등 잠시 잠깐의 시간을 갖는 것은 상황을 바라봄에 있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하고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생각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