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쉬운 불교 어려운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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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5-27 12:07 조회3,62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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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불교 어려운 불교
“모르는 것 화두 될 때 공부 진전, 쉽게 설법하는 노력도 필요”
방송국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문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 중의 하나는 부처님 말씀이 너무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TV나 라디오로 방송되는 내용도 그렇고 매일 휴대폰 문자로 받고 있는 부처님 말씀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원성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보편적인 진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대기설법(對機說法)으로 상대방에게 맞춰 설해졌기에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응병여약(應病與藥)에 비유된다. 따라서 말씀하신 배경과 맥락을 알지 못하면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말씀을 최종 마무리할 때 설해진 짧은 게송 하나만을 접하게 되면 이해하기 더 쉽지 않은 게 현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 내용을 뻑빽하게 넣다보면 자칫 듣거나 읽는 이에게 장황한 느낌이나 부담을 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짤막한 부처님 말씀이라도 화두처럼 곱씹어 보고 혹시 뜻을 잘 모를 때는 선지식이나 도반들에게 묻고 토론할 수 있는 재료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응대할 때는 바로 이러한 취지를 말씀드리고 소통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법담을 나누다 보면 어렴풋하나마 뜻이 통해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도 한다. 그럴 때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늘 법담을 나누라고 하신 당부 말씀을 돌아보며 보람을 찾기도 한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 한 대목이 시사하는 바가 있어 소개한다. 마을에 탁발을 나간 스님이 시주자 부부에게 설법을 요청받았다. 그런데 이 스님은 설법을 잘 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스님은 “아... 괴롭다” 하고 탄식했다. 부처님 제자로서 제 역할을 못하니 참으로 부끄럽고 괴롭다는 탄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스님의 탄식에 부부는 “스님, 고맙습니다. 정말 인생이란 괴로운 것이군요”하며 탄복을 했다고 한다. 스님의 한 마디 덕분에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이런 경우는 말하는 이가 잘하지 못해도 듣는 이가 제대로 알아듣는 기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님이 설법 능력은 부족했어도 좋은 인연을 만나는 복을 지녔던 것은 아닐까.
이처럼 인연이 있다면 어떤 상황도 좋은 인연으로 회향될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인연에 내맡길 일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도 ‘전도선언(傳道宣言)’에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가르침을 조리 있게 전하라고 당부하지 않으셨던가.
흔히 누가 어느 분 설법 잘 하시더라 혹은 잘 못하시더라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설법 잘 한다 할 때는 본인이 잘 납득했다는 뜻이겠고 못 한다 할 때는 반대의 뜻이리라. 그런데 설법 내용을 자기 기준으로 듣고 자기가 생각하던 바와 일치하니 잘되었다고 간주하는 경우라면 어쩔 것인가. 이럴 때는 듣는 이가 알기 원하는 만큼만 듣고 안다고 생각하게 되니 관념(相)을 여의라는 설법의 의미와 달리 자기만의 관념을 강화하게 되지 않는가.
법문을 잘 들었다면 대개 둘 중에 하나의 경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뭔가 깨달아 속이 시원해지는 경우이다. 이럴 때는 기존의 사고나 관념이 조금씩이라도 해체되는 길을 걷는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사고에 대해 강한 의문을 일으켜 화두로 삼게 되는 경우이다. 본인이 알고 있던 바가 사실인지 되돌아보고 섣불리 옳다고 단정 짓지 않고 철저히 탐구하는 길을 걷는다.
공부는 어디까지나 자기 공부이어서 텍스트나 가르치는 사람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쉬운 불교를 지향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자는 뜻은 아니다. 완간된 지 오래된 한글대장경도 더 깊은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용어도 현대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중국의 역경 역사가 수백 년에 걸쳐 다양하게 시도되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만사가 다 인연이라 공부에도 인연이 있다. 각자 꾸준히 정진해야 한다. 다만 본인의 노력만으로 성취하기가 여의치 않다면 선지식과 도반의 인연을 만날 수 있도록 부지런히 공덕도 쌓아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