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뜨락 | 너무나도 슬픈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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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3-30 11:42 조회4,19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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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슬픈 기도
4월은 장애인의 날이 있는 장애인의 달이다. 4월이 되면 장애인 관련 행사도 많고, 언론에서도 장애인 소식을 다루며 장애인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도한다. 하지만 그때뿐이지 곧 잊힌다. 그래서 장애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겹겹이 쌓이기 때문에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장애인은 여전히 소외계층으로 남아있다.
자료 정리를 하다가 ‘그 집 모자의 기도’란 시가 눈에 들어왔다. 2006년도에 내가 발행하던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 3회 추천을 받은 시인데, 작가 ‘김대근’은 전라남도 광주에 살고 있는 중증의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이 시를 읽으면 가장 심각한 장애인 문제가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마을에서 제일 볼품없고 초라한 집
지은 지 오래되어
기둥 몇 개가 벌레 먹은 사과처럼 썩어가는 집
예순 넘은 어매와
손발을 쓰지 못하는 서른 넘은 아들이 사는 집
어매는 집 앞 작은 텃밭에
강냉이, 물외, 애호박을 심어
아들의 입을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 집
마을에서 제일 비바람에 약한 집
무서운 태풍이 불어오던 어느 늦여름 밤
음산한 빗물들이 마루 위로 기어들고 있었네
깜짝 놀란 어매는 아들을 깨웠고
아들은 어매 먼저 나가라고 소리쳤네
어매는 사람들을 데리러 나갔고
하느님을 믿지 않던 아들은 기도했네
‘살려 달라’가 아니라 ‘감사하다’고
‘빨리 사람들을 보내 달라’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빗물이 방으로까지 기어들고 있을 때
어매와 젊은 남자 한 명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네
업혀 나가며 아들은 하느님께 원망했네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그러나 아들은 몰랐네
그가 기도를 했던 시간에
그의 어매도 기도를 했다는 것을
허름한 집에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시인은 장애가 심해서 노모가 아들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는데, 장마철 태풍과 함께 온 폭우로 집에 물이 들이닥치자 노모는 잠든 아들을 깨웠다. 노모가 아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고, 아들은 어매부터 나가라고 소리쳤다. 아들은 나가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기 때문에 꼼짝도 하지 않자 노모는 이웃의 도움을 요청하러 나갔다. 시인이 그때 한 기도가 가슴을 저민다. 어서 거대한 물결이 자기를 덮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시인은 구출되었다. 그는 살아난 것이 달갑지 않아서 신을 원망했지만, 자신의 기도보다 몸 못 쓰는 아들을 살려달라는 노모의 기도가 더욱더 간절했었다는 것을 깨닫고 모성애의 위대함을 노래한 詩이다.
김대근 시인은 현재 광주에 있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고 45살의 중년이 되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시인과 어매는 똑같은 기도를 하고 있다. 화재가 나면, 지진이 나서 아파트가 흔들리면, 요즘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보태져서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격리 생활을 하게 되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교육권, 노동권, 이동권, 차별금지 등 산적한 문제들은 제도로 해결을 할 수 있지만 재해 상황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재해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장애인 재난 대피에 대한 특별한 조치가 없다면 장애인복지가 발전한다 해도 장애인의 생명권은 보장받지 못한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시인처럼 이렇게 슬픈 기도를 하게 된다.
불교에서 기도란 모든 업장을 참회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체중생과 함께하기를 발원하고 회향하는 것이기에 장애인을 위해 기도하면 최고의 회향을 할 수 있다. 재해가 발생하면 주위에 있는 장애인에게 달려갈 마음을 갖는 것이 장애인을 위한 기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