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과연 우리 사회는 건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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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0-05 12:03 조회3,86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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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오른쪽 손목이 아프다. 다치지도 않았고 무거운 물건을 무리하게 들거나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시간이 흐를
수록 통증이 심해지기만 하니 그게 더 심상치 않은 노릇이다. 병원에 가기는 싫고,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파스를 찾아 붙인다. 특유의 싸하면서도 화한 냄새 때문일까. 늘 양쪽 손목에 보호대를 하고 파스 냄새를 달고 사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컴퓨터 자판 계속 두드려 봐. 손목 나가는 거, 우리 직업병이잖아. 소도 때려잡을 만큼 건강했던 너도 이젠 별 수 없구나….
소를 때려잡든 호랑이를 때려잡든 그만한 힘이 철철 넘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남들처럼 입맛이 없네, 어디가 아프네, 기운이 떨어지네 하면서 엄살을 부리지 않아서 그렇지 실상은 내 건강도 내놓고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작가들에겐 반려 질병과도 같은 허리 디스크 협착증이나 스트레스성 위염은 물론이요, 해를 더할수록 빈도가 잦아지는 감기치레, 남들이 꽃향기에 취해 찬란한 봄을 노래할 때 눈물 콧물을 짜야 하는 알레르기까지.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좋을 자기고백을 하는 것은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겉모습만 보고 건강한지 아닌지
를 단정 짓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 허우대는 멀쩡해도 속 빈 강정이 있을 수 있고, 허술하고 빈약하다 싶지만 알토란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 건강. 사람들의 말처럼 나는 정말 그렇게 건강한 걸까?
문득 내가 사는 이 사회에도 청진기를 대보고 싶어진다. 옥탑방ㆍ고시원ㆍ쪽방촌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위기
상황이 연일 뉴스를 타고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비보도 빈번하게 들려온다. 특히 안타까운 건 동반자살이라는 미명
아래 부모에 의해 자행되는 아이들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물음표를 찍을 수밖에 없다.
그런저런 영향 때문인지 텔레비전 보는 일에도 염증이 느껴진다. 재벌가의 불륜이나 온갖 권모술수가 판치는 드라마, 악랄한
범죄와 양극화의 폐해로 얼룩진 뉴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들만의 이전투구로 날을 세우는 시사 토크, 유치한 말장난
도 모자라서 수백억 원을 넘는 재산을 소유하고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해외여행을 즐기고 수천, 수백만 원짜리 명품으로 도배
를 한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방송하면서 평범한 소시민들의 어깨를 한층 떠 쪼그라들게 하는 허접한 예능 프로그램….
이것 또한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주소이자 비정상적인 건강의척도일진대.
지난해 0.84명으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도 그렇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
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저출산ㆍ고령화로 인해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코로나19 대응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18세가 되는 해에는 1억 원이 넘는 나랏빚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심상치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나라 중 불변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근본적인 원인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지난 7월 명실상부한 선진국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1964년 개발도상국의 산
업화와 국제무역 증진 지원을 위해 설립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
서 선진국으로 격상했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조건 반가워하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기뻐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처럼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 이것 또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재고해 봐야 할 문제겠다. 모름지기 건강이 몸이나 정신에 아무 탈이 없이 튼튼한 정도를 이르는 말인 바, 우리사회 역시 겉도 속도 두루 편안하고 살기 좋아야 건강하다고 할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이라고 마냥 자랑스러워할 수 없기는 2018년 1인당 국민소득 33,653 달러로 최고점을 찍으면서 세계 일
곱 번째로 ‘30-50 클럽’에 이름을 올리며 선진국 반열에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명 이상의 탄탄한 경제력과 많은 인구를 두루 충족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선진국의 대명사 30-50 클럽에는 미국, 영국, 프랑
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포진하고 있으니 자긍심을 가질 만도 하다. 하지만 어디에나 빛과 그늘이 공존하기 마련. 통계로
보면 선진국 수준이 분명하지만 소시민들의 삶에서 보면 먼 나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니 어쩔 것인가.
선진국을 일러 다른 나라보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의 발달이 앞선 나라라는 사전의 설명처럼 소득만 높다고 선진국
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소득 같은 경제력은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경제적인 바탕 위에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삶의 질, 생활수준, 복지, 행복지수 등이 고루 갖추어져야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올 초에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발표한 2020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두고 우리 정부에서는 역대 최고 점수, 최고 순위, 4년 연속 상승이라며 팡파르라도 울릴 기세였다. 우리나라가 2019년보다 점수가 2점 높아지고 순위도 6단계 올라설 수 있었던 요인으로 코로나19 K-방역 성과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립, 청탁 금지법 정착 등을 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웠다. 모두 다 함께 부끄러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2022년까지 세계 20위권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100점 만점에 61점, 세계 180개 나라 중 33위라는 성적이 그렇게 대놓고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일수도 있다. 얼마나 정의로운가, 얼마나 정직한가, 얼마나 충실한가, 얼마나 건강하고 얼마나 행복한가…, 뭐 그런 것들. 이를테면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와 병행해 ‘기회는 공정하게, 과정은 정의롭게, 결과는 평등하게’가 상식과 원칙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 같은 것들 말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이여, 항상 행복하여라. 태평하고 안락하여라.『숫타니파타』”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행복도 불행도 모두 자신의 행동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말씀하신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노력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마음을 경계하라고,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버리고 냉철한 비판력을 가져야 한다고 일러 주신다.사심이 없으면 망설일 일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는 눈과 확고부동한 의지가 생길 것이며 강한 추진력으로 행복하고 태평하고 안락하게 모두가 건강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속여서도, 어느 자리에 있든지 남을 멸시하거나 골려줘도 안 되며, 화를 내서는 더더욱 절대로 안된다.”라는 말씀으로 어두운 발밑을 밝히면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용감하게 한 발 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