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 불교의 실천수행론 - 삼십칠조도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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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0-05 11:53 조회3,75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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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실천수행론 - 삼십칠조도품 3
깨달음에 이르는 37가지 방법 가운데에서 오력五力은 오근이 실제로 작용하는 구체적인 힘으로서 믿음, 정진, 기억, 선정, 지혜를 말합니다.《잡아함경》에서는 오력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오력인가? 신력, 정진력, 염력, 정력, 혜력이다.
신력이란 불·법·승·계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인 사불괴정이요, 정진력이란 사정단이며,
염력이란 사념처요, 정력이란 사선정이며, 혜력이란 사성제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신력, 정진력, 염력, 정력, 혜력을 성취하리라는 마음으로 공부하라.
오력은 오근과 유사한 덕목인데, 그것보다는 진전된 수행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오근이 해탈이라는 이상으로 향하게하는 능력을 가리키는데 대해서, 오력은 해탈을 달성하게 하는
실제로 작용하는 구체적인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칠각지七覺支라는 것이 있습니다. 칠각지는 깨달음에 이르는 7가지 요소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칠각분七覺分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는 염각지念覺支, 택법각지擇法覺支, 정진각지精進覺支, 희각지喜覺支, 경안각지輕安覺支, 정각지定覺支, 사각지捨覺支가 있습니다.
염각지는 자기의 언행을 주의 깊게 생각하는 것으로 사념처에 대해 사유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택법각지는 그러한 것을 바른 지혜로써 더욱 잘 사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을 살필 줄 아는 지혜인데, 진리인 법을 판별하고 사유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진각지는 사정단을 말하는 것으로 선을 기르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희각지는 이렇게 하여서 마음에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경안각지는 의각지猗覺支라고도 하는데, 희각지에서 얻어진 기쁨으로 인하여 심신이 경쾌하고 명랑한 것을 말합니다.
정각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통일되는 것입니다.
사각지는 여러 가지 감정을 떠나서 어떤 일에도 마음이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사념처의 수행에서 시작하여
칠각지의 수행이 완성되면 깨달음의 지혜가 얻어지고 해탈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잡아함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칠각분을 닦는 요령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무력하여 망설여질 때는 경안각분, 정각분, 사각분을 닦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무력한 마음이 생겨
망설여질 때 이 수행법들은 무력감을 더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꺼져 가는 불을 살리고자 하면서도 재를 끼얹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마음이 무력하여 망설여질 때 경안각분, 정각분, 사각분을 닦으면 게으름이 더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럴때에는 택법각분, 정진각분, 희각분을 닦아야 불을 더 타오르게 하고자 땔감을 대 주는 것처럼 갖가지 가르침을 받고 인도되어서 기뻐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또 마음이 들 뜰 때는 택법각분, 정진각분, 희각분을 닦지 말고 의각분, 정각분, 사각분을 닦아야 불을 끄려고 재를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삼십칠조도품의 마지막은 팔정도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앞에서 자세하게 설명 드렸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이 사념처, 사정단, 사여의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를 모두 합하여 해탈에 이르게 하는 37가지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일곱 가지 항목의 하나하나는 독립된 수행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념처만 하더라도 신·수·심·법의 관찰을 통하여 몸의 부정을 관찰하고 수를 통하여 고를 깨닫고 마음의 관찰을
통하여 무상을 깨달으며 법의 관찰을 통하여 무아를 사유함으로써 불교의 핵심을 파악하여 열반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정단이나 사여의족, 오근, 오력 등도 그 자체로써 열반에 이를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념처에서 팔정도에 이르는 7가지 분류는 서로 중복된 개념이 많기 때문에 전체를 차례대로 밟아 올라간다거나 어느 것이 더 높은 경지라고 하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십칠조도품 모두를 다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어느 한 가지만 완성하여도 해탈에 이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각자의 근기에 따라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여 수행해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오근이나 오력은 신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초보자에게 적합한 것이고 사념처나 칠각지 등은 정에 비중이 많이 두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행이 된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의 수행체계를 보면 어느 한 가지 방법만을 선택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한 가지에만 의지하여 수행하는 경우도 있고 또 점차적으로 단계를 높여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온이나 삼법인, 사성제의 관찰은 초보자에게나 경지가 높은 사람에게나 한결 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팔정도도 초보자에게나 아라한과를 얻기 직전의 성자에게나 한결 같이 필요한 수행덕목입니다.
여기에 반해서 처음에는 시론, 계론, 생천론 등의 삼론에 의하여 불심을 키우고 그런 다음 점차로 사제, 팔정도의 이치를 깨쳐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혹은 처음에는 수식관을 통하여 마음을 안정시키고 여기에 따라 색계사선, 무색계선, 멸진정 등으로 나아가는 단계적인 수행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이러한 방법들이 병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근기에 따라, 혹은 자기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수행법을 찾아 수행하면 결국은 해탈이라는 같은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고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모든 수행법은 크게 나누어 보면 계·정·혜의 삼학에 포함되는 것이고, 또 팔정도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파불교에 가면 매우 세분하여 수행법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 근본은 삼학과 팔정도에 있으며 범위를 넓게 잡는다고 하여도 삼십칠조도품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