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뜨락 | 은사님이 주신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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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8-31 21:21 조회3,70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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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님이 주신 용돈
우리 모두는 용돈을 받은 추억이 있다. 할머니 고쟁이 주머니에서 나온 동전 한닢을 받아들고 좋아서 깡충깡충 뛰면서 동네 구멍가게에 달려가 아이스께끼를 사먹던 시절에는 용돈의 가치가 정말 컸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용돈으로 주식을 한다고 하니 그 액수가 아이스께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텐데도 용돈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하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풍요로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용돈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는 그저 예뻐서, 인사를 잘 해서, 착해서, 동생을 잘 돌봐줘서 등 소박한 칭찬의 의미였다면 요즘은 성적이 올라서, 아빠가 승진해서 등 인센티브 즉 성과급 성격이 강해서 용돈을 받는 아이들은 꽁돈이 생긴 것이 아니라 계약에 대한 집행이기에 감동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나라 나이로 65세에 깡충깡충 뛰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용돈을 받았다. 정말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용돈이라서 아름다운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 사연을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한다. 코로나19로 생긴 시간을 이용해서 ‘포스트코로나시대의 해법-불교의 복지사상’이란 책을 집필하였는데 내용 정리를 하다 보니 대학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그때는 아날로그 시대라서 과제 레포트를 쓰려면 도서관에서 몇날 며칠 책을 찾아서 일일이 살펴보며 필요한 부분은 노트에 적거나 복사를 해야 했다. 복사 분량이 많으면 책을 아예 구입해야 해서 용돈의 대부분을 도서 구입비로 사용했다.
그보다 더 힘든 일은 도서관 서고에 꽂힌 책들을 한권 한권 꺼내봐야 하는데 전문서적이라서 엄마가 해줄 수 없었다. 여고 동창생들도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의 석사논문 쓰기에는 우리 불교학과 교우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어렵게 석사논문을 준비해서 논문심사를 받을 때 심사위원 교수님들은 불교의 복지사상은 논문 주제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갖고 계셨다. 1982년 당시는 한국 사회 자체가 사회복지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 고생이 심했었다.
어찌하다 보니 그동안 34권의 책을 발간했는데 장애인과 관련된 서적이었기 때문에 교수님이나 동창들에게 책을 보낸 적이 없었지만 이 책은 가장 싱그럽던 대학 4년과 대학원 2년 동안 공부한 불교학에 다시 5년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복지학과 연계하여 쓴 불교복지 전문서여서 서윤길교수님께 보내드렸다. 학교 다닐 때 지도를 받은 교수님들은 이미 다 돌아가시고 서윤길교수님만 계시기 때문이다.
책을 받으신 서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장하다. 우리 새끼”그 짧은 한마디에 코끝이 찡해지고 목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통장으로 용돈을 보내주셨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이후 그 누구에게서도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40년만에 처음으로 그것도 은사님께 받은 용돈에 반성과 후회가 밀려왔다. 교수님은 나를 당신 자식으로 생각하시는데 졸업 후 한번도 찾아뵙지 않았고, 오히려 모교가 나를 부르지 않는다고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퇴직하신지 20년이 되는 교수님께 용돈을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용돈을 받고 나니 죄송하기도 하고 너무나 감사하기도 하고 만감이 밀려왔다. 이런 은사님이 계시다는 것이 내 삶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우바새계경에 보시의 대상으로 육방을 설하며 ‘동방 부모 다음이 남방 스승을 꼽았다. 스승에게 공양하고 존경하며 잘 배워서 실천한다면 스승은 제자에게 때를 놓치지 않고 가르쳐주고, 남김 없이 다 전승하며, 스승을 능가하더라도 질투하지 않으며, 보다 나은 스승, 좋은 친구와 관계를 맺도록 한다’고 되어있는데 교수님이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다.
교수님이 보내주신 용돈 30만원으로 무엇을 해야 의미있는 실천이 될지 고민하는 재미가 너무나 커서 지금도 혼자서 싱글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