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뜨락 | 날아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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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5-27 12:11 조회3,99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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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올랐어?
우리 사회가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이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채널을 통해 같은 드라마를 시청하여 1970년에 방영된 드라마 <아씨>가 방송될 때는 수돗물 사용량이 줄었다고 한다. 주부들이 일손을 놓고 TV 앞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5년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날에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 저녁 자리를 만들지 않아서 음식점이 썰렁했다고 할 정도로 높은 시청율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가 없다. 매체가 다양해져서 시청 선택권이 확대되었으며 그 시간에 맞춰 시청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시간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유형의 콘텐츠에 매니아들이 생겼다.
매니아의 특징은 몰아보기를 하는 것인데 나는 어떻게 하루종일 드라마를 본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tvN에서 지난 4월에 종영한 <나빌레라>를 몰아보기로 다 보았다. 재미있다기보다 과장되지 않게 우리의 현실을 잘 그렸기 때문이다. 주인공 덕출은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고 우체국 집배원으로 정년퇴직을 한다. 퇴직 후 그가 혼잣말로 내뱉은 말은 ‘왜, 이렇게 하루가 길어’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터를 누비다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도 쉬지 못했던 시절에는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던 시간이 일이 없어지자 하루 24시간의 속도가 매우 느리게 느껴졌던 것이다. 인간에게 직업은 경제 활동 이외에 자존감을 높여주는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덕출은 음악 소리에 끌려 발길을 옮기다가 젊은 발레리노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남자 무용수가 높이 뛰어 날아오르는 동작을 보고 놀랍고 신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발레였고, 자신의 꿈이 발레리노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발레를 배우기로 결심하지만 발레 스튜디오에서 칠십이 다 된 연습생을 받아줄 리가 없었다. 어렵사리 허락을 받은 후에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모두들 그 나이에 그것도 무슨 남자가 발레를 하느냐며 부끄럽다고 하였다. 누구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꿈이 다른 누군가에는 아무런 쓸모없는 수치스러운 일이 되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주었다.
그런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갈라쇼 특별 무대에 서게 되었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알츠하이머 증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가 음악 소리에 끌려 발레 스튜디오로 간 것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날이었다. 죽음의 선고보다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공연 전 그가 알츠하이머란 것을 안 사람들은 모두 그를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할아버지의 발레 선생이던 채록은 무대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이고 열심히 연습을 했기 때문에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채록의 할아버지에 대한 신뢰는 단순히 발레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불우한 환경 속에서 혼자 살고 있는 청춘 채록의 아픔을 할아버지가 보듬어준 인생의 스승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덕출은 음악이 시작되자 두 손을 모아 발레 동작을 시작했고 심지어 턴을 하며 껑충 뛰는 점프까지 해냈다.
이렇게 청춘과 노년의 브로맨스가 비록 드라마이지만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젊어서 그리고 늙어서 아무 힘이 없지만 서로 진실로 아껴주는 신뢰가 생기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해외 콩쿨에 참석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온 채록에게 할아버지는 ‘날아올랐어?’라고 물었다. 자기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편지봉투를 배달할 정도로 알츠하이머 증상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발레와 자신의 목표였던 날아오르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출은 정신이 맑았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꿈이 있다는 거’라는 영상을 남기는데 이것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부처님도 중생들에게 바로 이런 꿈을 갖고 도전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중생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을 갖도록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부처 즉 깨달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끊임이 자기 수양을 하며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상구보리(上求菩提 : 위로는 깨달음을 얻고) 하화중생(下化衆生 :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이란 과제를 주신 것이다.
우리도 지금부터 우리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며 날아 오를 꿈을 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