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뜨락 | 사람 중심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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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1-14 16:00 조회3,12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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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불신, 배제, 차별...이런 단어들보다 더 끔찍한 것은 혐오이다. 혐오는 종(種)이 다른,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 인간과 귀신 이렇게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혐오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두려움을 너머 공포를 느낀다.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고, 일반인이 장애인을 혐오하고, 백인이 흑인을 혐오하고...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갈라져서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정치 혐오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두명만 모여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팽팽히 대립하며 서로의 이념을 혐오한다.
좋게 얘기해서 이념이지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감정에 가깝다. 감정은 개인적이고 가변성이 커서 불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감정만큼 강력한 힘도 없다. 감정은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도 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도 있다. 그런데 감정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의해 다양하게 형성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감정은 철학으로 발전하는데 철학은 부드러운 학문으로 인간성을 온전히 존중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사랑의 한 형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선한 의지와 희망이 인류에 대한 존중과 결합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은 희망을 향하고 있다. 희망이 없다면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우리 모두 희망으로 만든 꿈이 있기에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희망을 만드는 것일까? 답부터 말하면 두려움을 없애주면 된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인간이 혐오의 감정을 갖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였다. 두려움은 인간이 살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인데 두려움 때문에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여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배제하고 급기야 혐오심까지 만들어 자기 방어를 하면서 자기가 최고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진다고 한다. 자기가 최고이기 때문에 남들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시기하며 지속적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것인데 이런 공격이 자기 자신도 무너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희망과 두려움이 함께 있다. 희망은 밖으로 향하고 두려움은 안으로 움츠러든다. 두려움은 일어날지도 모르는 나쁜 결과에 집중하고 희망은 좋은 결과에 집중한다. 정치인은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제도를 마련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중심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개선해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존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 중심 사회의 철학은 불교에 잘 나타난다. 불교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즉 우주와 내가 하나이다. 그리고 중생에게도 불성이 있어서 부처님과 중생이 다르지 않다고 가르친다. 이 사상이야말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인간을 존중하는 체계이기에 불안이 사라지고 희망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부르짖었던‘사람이 먼저다’는 수직 관계이지만 사람 중심은 원융무애(圓融無礙) 즉 모든 존재가 서로 방해됨이 없이 일체가 되어 융합한다는 불교의 이상적인 경지이다. 모든 사람이 타인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을 조금만 갖는다면 성차별, 장애차별, 인종차별 등으로 인한 혐오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혐오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붕괴를 초래한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다고 하면 누구와 살 것인가?
중생은 불성을 갖고 있는 존엄한 존재이기에 사람 중심의 사회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사회권(social rights)을 누리며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새해는 희망이 가득한 불국토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