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이야기 | 박새(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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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1-15 13:23 조회3,66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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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난 어느날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 왔지만 새들이 있어야 할 상자는 비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새끼들은 보이질 않았다. 잠시후 어딘가에서 박새 새끼의 먹이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가니 새끼 박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먹고 있었다. 다시 녀석을 잡았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끼 소리를 따라 허겁지겁 다니며 한 마리씩 다시 잡아 왔다. 녀석들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레 상자 속에 넣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데...” “너를 위해 얼마나 애쓰는데...” “하루종일 온통 네 생각뿐인데...” 몰라주는 맘이 너무 야속하기만 했다. 눈물과 콧물을 닦고선 새끼들의 발을 실로 묶었다. 다시는 어미따라 나가지 못하게 하나씩 하나씩 꽁꽁 묶어서는 상자 구석에 못을 박아 메어두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일어나 먹이를 잔뜩 준 다음 학교를 다녀왔다. 다행히 예상대로 새끼들은 상자 속에 모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주는 먹이를 보고 달려들지 않았다. 모두들 웅크린 체 눈을 감고 있었다. 한 마리를 꺼내어 들어보니 야윈 발목이 벗겨지고 진물이 나고 있었다. 어미 따라 나가려 애쓰다 묶인 실에 쓸려 상처가 난 것이다. 맘이 아팠다. 정성스레 약을 바르고 다시 놓고 솜을 덮어주었다. 그래도 실은 풀어주질 않았다. 밤새 잠이 오질 않았다. 중간 중간 깨어 솜을 들춰보니 새끼들은 작은 소리를 내며 서로를 파고들고 있었다. 추운듯하여 솜을 꺼내어 더 덮어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새끼들은 먹이를 먹질 않았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와 멀찍이 상자를 보니 못에 메인 실들은 모두 상자 안을 향해있었다. 다행히 새끼들이 나간 흔적은 없었다. 새끼들 모두 솜 아래 그대로 있어 살며시 들춰 보았다. 그러나 나를 향해 입을 벌려 달려 들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모두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작은 성냥갑에 한 마리씩 넣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뒷산을 내려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렸다. 눈앞에 있는 어미를 따르지도 못하고, 푸른 하늘을 제대로 날아 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새끼들의 심정이 공감되는 순간, 솟아난 죄책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한동안 담장을 지나기가 무서워 집을 나서질 못했다. 나의 욕구만 앞선 체 새끼들의 맘은 헤아리지 못한 나의 잔인함이 너무 부끄러웠고 혹 누군가 “이놈” 하고 나타나 잡아 갈 것만 같아 두렵기만 했다. 나의 욕심이 저지른 중대한 잘못을 누군가 용서를 해주길 바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새 새끼들을 향한 애끓는 조바심은 새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욕구를 채우지 못한 나의 불만에 따른 초조함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꿀벌과 꿀벌을 닮은 꽃등에를 구별하듯 어린 나이에 사랑을 의태(擬態)한 소유욕을 구분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고향집을 들를 때면 담에 새겨진 어린 시절 새겨둔 잔인한 자국을 보곤 한다. 올 추석에도 아이를 안은 아내 손을 꼭 잡고 그 자국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