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선성취 | 현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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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5-27 12:10 조회3,64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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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6월 달은 호국보훈의 달로 6월 6일은 현충일이다. 현충일은 나에게 나름대로 뜻깊은 날이다. 나는 군 복무를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에서 했다. 그 당시 국립현충원에는 내가 소속된 경비대와 의장대, 국악대, 기무대가 있었다. 경비대는 의장대와 같은 건물을 사용했는데 1층은 경비대가 쓰고 2층은 의장대가 사용했다. 일요일이면 의장대와 자주 축구 시합을 했는데 의장대는 키만 컸지 축구 실력은 없어서 항상 경비대가 이기곤 했다.
국립현충원에서 야간근무를 할 때 보름달이 뜨면 묘비가 달빛을 받아 붉게 빛나곤 해서 가끔 무서울 때도 있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 묘 뒤쪽에는 조선 시대 중종의 후궁이며 덕흥대원군의 생모이자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의 묘가 있는데 야간에 창빈 안씨의 묘를 지날 때마다 뒷골이 서늘하고 뒤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빨리 뛰어가곤 했다.
국립현충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명당자리 중 하나이다. 국립현충원은 현충탑을 기준으로 뒤로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있다. 국립현충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지명은 관악산 공작봉이다. 공작은 밀교에서 ‘불모대공작명왕’, ‘공작왕모보살’ 등으로 불리는 명왕의 이름으로 이 명왕은 뱀으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하고, 인간을 위해 재앙을 물리치고 비를 오게 하는 공덕이 있다고 하니 국립현충원은 밀교와 무관하지 않은 곳이다.
나는 국립현충원에 근무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위패봉안관을 찾곤 했다. 내가 야간 근무를 서던 현충문을 지나면 현충탑이 나온다. 그리고 현충탑 지하에는 위패봉안관이 있다. 위패봉안관에는 6·25전쟁에서 전사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유골 또는 시신을 찾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이 약 10만 명이 새겨져 있다.
나의 작은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어린나이에 참전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국립현중원에 작은할아버지의 이름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위패봉안관에서 작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작은 할아버지가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옛날 분들은 법적인 절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실종과 사망선고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제라도 법적 절차를 거처 국립현충원 위패봉안관에 작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후손된 자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충일인 6월 6일은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희생한 순국선열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한 전몰 장병의 숭고한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우리들이 이 나라에서 평화롭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조상과 여러분의 조상, 우리 모두의 조상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국을 위해 주저없이 자신을 태워버린 영혼들의 거름으로 현재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습니다. 조국을 위해 한줌 흙으로 돌아간 숭고한 넋을 위해 두 손 모아 합장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