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선성취 |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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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1-15 12:23 조회3,44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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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사람은 ‘색수상행식’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색’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의미하고, ‘수’는 우리의 몸(눈, 귀, 코, 혀, 피부)이 외부세계와의 접촉에 의해 받아들이는 느낌으로 좋은 느낌, 안좋은 느낌, 좋은 것도 아니고 안좋은 것도 아닌 느낌으로 나뉜다. ‘상’은 외부로부터 받은 느낌을 식별과 분별로서 특정화하여 저장하는 작용으로 다른 말로는 표상작용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표상작용의 의해 인식대상을 형상화하거나 언어화하여 기억하게 된다. ‘행’은 의지작용으로 몸과 입과 뜻으로서 행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행할 때에는 ‘상’에 의해 저장되어진 내용들을 비교 분석해서 행하게 된다. ‘식’은 분별작용으로 ‘색수상행’에 의해 각각 저장된 정보들과 새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비교하고 분별하여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은 이러한 오온의 활동으로 태어나 성장하고 늙고 병들고 죽을 때까지 매 순간순간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즐거워하거나 아니면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거나 아니면 퇴보시키면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내면을 성장시킨 사람은 천상에 태어나거나 보살과 부처에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퇴보시킨 사람은 축생이나 아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은 결국 인간의 인식작용와 의지작용에 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 매 순간순간 선택의 과정을 거처 성장하게 된다. 좋은 선택을 할 때도 있고, 나쁜 선택을 할 때도 있다. 때로는 선택을 강요하기도 하고 강요받기도 한다.
나는 어릴때부터 선택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 이유는 선택을 했을 때 결과가 좋을때보다 나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택이라는 것이 선택 당시의 순간의 결정이 아니라 대부분 인식작용에 의해 저장된 과거 전생부터 해왔던 선택의 정보들이 의지작용에 의해 반복해서 일어나 선택한 것이었으며, 내가 아는 얕은 지식을 마치 진실인양 어리석음에 의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었다.
윤회의 세상인 육도(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사람’ 그리고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인 인간계에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사람” 한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은 보살이나 부처, 천상에 있을 것이며, 나쁜 사람은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본 아주 작은 단면만으로 사람을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규정지어 선택하여 판단한다. 그리고 그 얕은 지식으로 사람을 공격하고 매도하며,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계의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할 때도 있고, 나쁜 일을 할 때도 있다. 단지 어느 쪽을 더 많이 하는지 각자 그 빈도수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쉽게 판단하여 규정지어 선택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은 어디에서 보느냐,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 어떤 조건으로 보느냐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계에는 잘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못나기만 한 사람도 없다. 각자가 다 조금씩 부족한 점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서로 부족한 사람들끼리 내가 잘났네, 니가 못났네 아웅다웅 거리며 싸운다.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라는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사람끼리 그 부족함을 각자 인정하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좋은 점도 봐주면서 서로 용서하고 인정해주며 함께 화합하고 협력해 나가는데 있는 것이다.
우리 종단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안해서 교화가 안되니, 저것을 안해서 교화가 안되니, 이것을 하면 교화가 잘되니, 저것을 하면 교화가 잘되니를 논하기 전에 우리 승단부터가 서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감싸주며 함께 화합하고 협력해 나아간다면 교화는 저절로 잘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