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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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 | 소중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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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1-15 12:17 조회3,6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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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 작은 분식점에서 찐빵과 만두를 파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아침부터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였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그치기는커녕 빗발이 점점 더 굵어지자 어머니는 서둘러 가게를 정리한 뒤 큰길로 나와 우산 두 개를 샀습니다.

그 길로 딸이 다니는 미술학원 앞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학원 문을 열려다 말고 깜짝 놀라며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습니다. 작업복에 낡은 슬리퍼, 앞치마엔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 딸이 상처를 입을까 걱정된 어머니는 건물 아래층에서 학원이 파하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한참을 서성대던 어머니가 문득 3층 학원 창가를 올려다봤을 때, 마침 아래쪽의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던 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머니는 반갑게 손짓을 했지만 딸은 못 본 척 얼른 몸을 숨겼다가 다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숨겼다가 얼굴을 내밀곤 할 뿐 초라한 엄마가 기다리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어머니는 딸의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딸이 부끄러워할 것만 같아 한나절을 망설이던 어머니는 다 저녁에야 이웃집에 잠시 가게를 맡긴 뒤 부랴부랴 딸의 미술학원으로 갔습니다.

끝나버렸으면 어쩌지....” 다행히 전시장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벽에 가득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어머니는 한 그림 앞에서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우산, 밀가루 반죽이 허옇게 묻은 앞치마, 그리고 낡은 신발. 그림 속엔 어머니가 학원 앞에서 딸을 기다리던 날의 초라한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 날 딸은 창문 뒤에 숨어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가슴에 담았던 것입니다.

어느새 어머니 곁으로 다가온 딸이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모녀는 그 그림을 오래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tv동화 행복한 세상-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사실 그런 날들이 있다. 이미 나는 원가족(인간은 출생하여 성장하면서 두 번의 가족을 경험한다. , 출생하여 부모 밑에서 자라 온 가족과 성인이 되어 결혼과 함께 새롭게 형성하는 가족이다. 이때 전자의 경우를 원가족이라 한다.)과 분리되어 나의 가정을 이룬지 오래지만, 문득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혹은 위의 글처럼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게 되면 어느새 나의 머릿속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 했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들로 꽉 차 있곤 한다. 그래 그런 날들이 있다.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왜 그리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지는지.

10여 년 전부터 나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어머니와 나의 자녀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나 식사를 하시는 모습 등 그 순간, 순간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다. 언젠가는 어머니가 지금처럼 내 곁에 계시지 않을 것이고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소중한 시간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애석하게도 세월 속에 점차 희미해질테니 그렇게 동영상으로라도 남겨 그 언젠가 다시 보지 못할, 다시 듣지 못할 나의 어머니 얼굴과 목소리를 계속해서 보고 듣고 싶은 것이다.

좀 더 젊은 시절의 나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면 나 또한 못 살 것 같다 그리 생각했다. 어머니가 안 계신 이 세상에서 내가 어찌 멀쩡히 숨 쉬고, 먹고, 자며 다른 이들과 함께 또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그 언젠가 어머니와 이별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저 내게 남은 것이 후회와 미련만은 아니기를, 그 감정들로만 가득한 이별이 아니기를 바라게 되었다.

결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크기가 줄어들어서가 아니다. 흐른 세월만큼 이전과는 달라진, 좀 더 성숙한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기쁨, 슬픔, 죄송함, 애틋함, 안쓰러움. 지난날 어머니께 잘못했던 일과 어머니와 함께 기뻤던 일. 여전히 어머니라는 존재는 나로 하여금 이렇게 많은 감정과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어머니란 존재는 누구에게나 그러리라 생각한다. 떠올리면 애틋하고, 보고싶고, 또 살아가다 힘든 상황을 맞이하면 자연스레 먼저 떠오르는 그런 존재. 이 세상에서 언제든 항상 내 편이 되어줄 그런 사람.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행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일 뿐이다. 사실 앞선 글 속의 어머니는 딸의 그림을 보고 나서야 그 당시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글 속의 딸이 그 날 어머니에게 왜 먼저 집에 가셨느냐고 물어보았다면, 혹은 자신이 왜 창문 밖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는지 먼저 얘기했다면 어머니가 그렇게 오랜 시간 오해하고 속상해하지 않으셨을 텐데 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소중한 내 가족일수록 사소한 오해가 생기지 않게, 뒤늦게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게, 그때그때 알아주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부모님께는 더욱. 이 글을 읽는 대상의 연령층과 개개인의 상황은 매우 다양하리라. 그러니 어머니나 아버지와 같이 그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모두의 상황에 딱 들어맞게 이 글을 마무리하자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대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욱 많이 표현해라. 후회가 남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