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뜨락 | 이건희는 문화재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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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1-15 12:22 조회3,57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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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이건희를 삼성그룹 회장인 기업인이나 재력가보다는 이건희 컬렉션으로 더 오래 기억될 듯 하다. 이건희회장은 지난해 78살로 세상을 떠났는데 2014년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7년 동안 병원에서 살았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소문은 이미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소문에 재산이 많은 사람은 죽기도 힘들구나 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36년 동안 일본 통치하에 살면서 빼앗겼던 우리 문화재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돌보지 못해 전세계로 뿔뿔이 팔겨갔던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이건희회장이 발견할 때마다 한점 한점 사모았기에 그 소중한 문화재들이 지금 우리 앞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은 9,797건 총 2만1,600여 점인데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국보·보물 28건 등 명품 45건 77점으로 사람들에게 최초로 공개된 것이다.
이 전시에는 겸재(謙齋) 정선의 걸작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삼국시대 금동불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일광삼존상'(국보 제134호), 현존하는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단원(檀園) 김홍도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이 있었다.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를 한눈에 보면서 신라시대 왕관 등을 볼 때와는 달리 그 시대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 시대에 만들었다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세련된 조각에 우리 민족의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삼국시대 '보살상'(보물 제780호)은 생각보다 매우 작았는데 인자한 표정이 마치 살아있는 듯 하여 두 손이 절로 모아져 합장을 하였다. 불심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성 높은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불화 2점도 있었다. 고려불화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는 채색이 아직도 생생하여 아름다움으로 신심을 북돋아주었고,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은 고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금과 은가루를 아교에 개서 만든 금니를 붓으로 찍어 진한 감색 종이에 쓴 사경(寫經)으로 극락왕생을 위한 가르침이다. 문경(文卿)이 사경 앞에 섬세한 금선으로 경전의 내용을 그려 넣어서 이해를 돕고 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삽화이다.
사경 앞에 비로자나불(오른쪽)과 보현보살(왼쪽)이 수많은 청중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그렸는데 보현보살 아래에 선재동자가 있어서 53명의 선지식을 만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면서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 깨달음에 이르는 선재동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보현보살의 10가지 행원 가운데 ‘잘못이 있으면 참회하겠습니다’와 ‘나의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겠습니다.’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우리 사회 현상이 되고 있는 내로남불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잘못에 대한 참회가 없으면 올바르게 발전할 수가 없다. 나의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공덕을 가로채어 자기 공인양 내세우는데 이것은 사기이며 우리 사회를 불신으로 갈라놓는다. 작품 설명에 써놓은 보현보살 10개 행원을 읽어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길 바래본다.
전시회장을 나오면서 이건희 회장의 애국심이 느껴졌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문화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한 점 한 점 모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선물하였으니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을 슬기롭게 넘기고 나면 문화강국으로서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야말로 나의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린 보현보살의 화신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