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바루기 | 수슘나(suṣumṇ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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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1-14 16:13 조회3,54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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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는 우주의 축소판이다. 소우주라는 관점에 따라 인체를 통해 두 가지 양극의 힘이 흐른다. 태양과 같은(sūrya-svarūpa) 힘과 달과 같은(candra-svarūpa) 힘이 그것이다.
태양 에너지는 낮의 여러 힘, 즉 의식적인 인지·객관적 지식·구별·지적 식별을 향한 원심적인 힘을 나타낸다. 달의 에너지는 잠재의식적 정신이라는 어둠 속에서 일하는 밤의 힘을 상징한다.
이 두 힘은 정신적 에너지로서 두 개의 주경로 또는 통로, 즉 달적인 이다-나디(iḍā-nāḍī)와 태양적인 삥갈라-나디(piṅgalā-nāḍī)를 통해 인체를 관류하고 있다.
이다와 삥갈라는 두 개의 나선으로 나타나며 각각 좌우의 콧구멍(鼻孔)에서 발하여 수슘나 나디(suṣumṇā-nāḍī)를 둘러싸고 반대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수슘나 나디는 척추 중심을 내부가 비어있는 통로처럼 있으며 척추 기저부에 있는 회음부에서 이다와 삥갈라가 만나고 있다.
신비한 세계 축인 성스러운 〈수미산〉에 비유되는 수슘나는 태양과 달의 흐름 사이의 통합을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상과 최하 중심의 여러 힘을 결합할 수도 있다. 이렇게 통합된 태양과 달의 에너지는 승화되어 중심에서 중심으로 그것들이 최상의 다원적 의식 단계인 〈천변연화(天弁蓮花〉에 이를 때까지 높아진다.
수슘나는 쿤달리니(kuṇḍalini)의 잠재적 창조력(현대 심리학자가 말하는 리비도[Libido])이 깨어나지 않는 한 그 하단에 닫혀 있다. 이 상태에서는 똬리를 튼 뱀에 비유되는 쿤달리니는 수슘나의 입구를 막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티베트 관상의 스승은 제자가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어떤 단언도 하지 않는다. 그는 ‘나디는 어디에 있다’고 하지 않고 ‘생명력의 흐름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생생한 심적인 상을 자신 속에서 만들어 내라.’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관상자의 의식과 창조적인 상상력을 일정한 기능(예를 들면 호흡)이나, 그것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영향 받을 수 있는 기관 위로 향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의식력의 흐름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관계와 전제조건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그는 정신화된 혹은 ‘미세물질의’ 신체(산스크리트어로 sukṣmā 또는 liṅga śarīra)의 민감한 신경조직을 형성하는 통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슘나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양극의 나디 흐름을 알아차린 후에 정신력의 주류를 방향잡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슘나는 머리카락만큼 미세해질 수 있지만, 또 다른 때에는 온 몸이 힘의 단일한 흐름으로, 즉 모든 한계를 멸하고 온 우주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커지는 최고의 영감의 불꽃이 될 정도로 광대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