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이야기 |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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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2-14 14:47 조회3,01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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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혼자 운전해 가던 출장길 차안에서 ‘2000여년 이상 베스트셀러 책은 무엇일까요?’ 라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자의 질문을 들은 적 있다. ‘성경’이라 혼자 답을 했지만 오답이었다. 논어라 했다. 한 달 여전 보고서 작성을 하다 필요한 참고문헌이 있어 책장을 뒤지다 ‘논어’를 발견했다. ‘내가 산 기억은 없는 데 누가 샀지?’ 라며 꺼내들다 문득 ‘베스트셀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지 궁금해져 펼치려다 보고서가 급한 상황이라 바로 덮었다. 그리고 어제, 우연히 회의에서 만난 사람이 내 전공이 ‘조류생태학’임을 알고는 ‘기러기가 새 중에 가장 예의가 바르다면서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대장(선두)을 잘 따르고 V자 형태로 질서 있게 줄지어 날기 때문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이런 내용이 논어에도 있다고 했다. 줄지어 나는 것이 예의와는 별개고 대장도 없다는 말을 하고팠지만 ’논어에도 나오는 군요‘라는 답변만 하고는 회의 준비하는 척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어제 논어를 읽었다. 계속해서 내 주변에 인연으로 머물고 있는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다. 읽어 보니 유물들과 함께 박물관에 있어야 할 사상인 ‘유교’를 다룬 책일 것이라는 기존에 가졌던 선입관과 너무나 다른 책이었다. 그리고 공자는 배운 사람도 아니었으며 인간적이며 무엇보다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에 놀랐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도에 대한 갈망으로 지혜를 얻은 분이라는 것에 존경을 표하게 되었다. 늘 진리를 지향하고, 인류애와 배려로 예를 갖추고 길 줄 아는 삶이 그가 이루고자 했던 삶이었다. 논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헤매는 자에게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답을 주는 책이며 왜 이천년 이상 존경 받아 온지를 알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기러기가 예의 바르다’라는 내용은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규합총서’라는 곳에 이러한 문구가 있다고 했다.
‘기러기를 평하여 “추우면 북으로부터 남형양에 그치고 더우면 남으로부터 북안문(北雁門)에 돌아가니 신(信)이요, 날면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하니 예(禮)요,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節)이요, 밤이 되면 무리를 지어 자되 하나가 순경하고...’
짝을 잃으면 다시 얻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하다. 실제 동물행동학의 선구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로렌츠’의 연구에 따르면, 알에서부터 부화시켜 직접 키운 기러기가 로렌츠 자신(어미)을 떠나 야생으로 돌아간 후 짝을 이뤄 지내다가 사고로 짝을 잃은 후에는 한동안 짝을 이루지 않고 자신(어미)에게 돌아왔다고 한다. 이는 오랜 연구와 관찰을 통해 안 사실인데 옛 선인들이 어찌 아셨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기러기 무리는 쉬거나 자는 동안에 모두가 쉬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 가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삵이나 너구리 등 천적이 주변에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천적을 번갈아 가며 살피니 무리를 이루는 것이 유리하다. 또한 먹이도 함께 찾을 수 있어 굶어 죽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의 최소단위는 어미와 새끼로 이뤄진 가족이다. 기러기 어미는 번식이 끝나면 각자 흩어져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오리와 달리 새끼를 데리고 월동지인 우리나라로 날아온다. 그리고 월동지에서 겨울을 함께 보낸 후 다시 번식지인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한 번 맺은 짝은 평생을 가며 새끼에 대한 애정이 깊다. 가족들이 모여 큰 무리를 이루기는 해도 사회적 체계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무리의 대장은 없다. 무리 속에서는 가족끼리 서로 경쟁이나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서식하는 기러기는 총 11종이 있다. 붉은가슴기러기, 흑기러기, 캐나다기러기, 흰기러기, 흰머리기러기, 줄기거리, 개리, 회색기러기, 쇠기러기, 큰기러기, 흰이마기러기가 있다. 이들 중 가장 흔한 기러기는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다. 주로 큰 하천이나 저수지 주변 농경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수면에서 쉰다. 먹이는 대부분 추수 때 떨어지거나 볏짚에 붙어있는 볍씨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 배불리 먹고 쉬는 경우도 있지만 잠은 수면(水面)이 가장 안전하다. 수면은 천적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겨울철 낮은 수온으로 인해 체온 손실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의 농경지 면적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무엇보다 2006년 사료 값 폭등 이후 농경지 내 대부분의 볏짚이 사료용으로 수거되고 있어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생존개체수는 점점 줄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혼례가 사라져 ‘목안’이 사라진지 오래된 것처럼 이제 기러기도 우리나라 들녘에서 사라질 것이다. 해매다 조류인플루엔자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어디 한 곳 편히 쉬고 먹을 곳도 없는 현 상황이 칼바람 부는 겨울바다 냉혹하다. 오후에 현장에서 들었던 ‘끼륵’ 하는 기러기들의 슬픈 소리가 환청처럼 계속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