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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오른손의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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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2-13 11:27 조회3,9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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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이 깨면 이불 속에서 나와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연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양치를 한 후 주방으로 가서 물 한 컵을 따라 마신다. 헬스클럽에 가기 위해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집을 나선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이동은 자동차로.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두 시간 동안 준비운동과 기구를 이용한 근력운동, 러닝머신,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아침 메뉴는 제철 채소를 이용한 샐러드와 인절미 한 조각 정도로 단출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세탁기를 돌리거나 청소를 하고 나면 오전 시간이 다 간다.

 

오후에는 약속이 있으면 외출을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원고 작업을 한다. 2시쯤 되면 대충이지만 점심을 챙겨 먹는다. 막간을 이용해 라디오를 켜고, 냉장고에서 멸치볶음, 콩자반 같은 밑반찬이나 나물 무침을 꺼내고, 전날 저녁에 넉넉하게 끓여두었던 미역국이나 된장찌개를 데우고, 냉동시켜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식탁 앞에 앉는다. 먹고 나면 다시 또 설거지. 커피도 한잔해야 정신이 나니까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는 동안 그라인더를 돌려서 원두를 갈고 커피 드리퍼에 필터를 넣은 후 커피를 내린다.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거실 창 너머로 옆집 텃밭을 내다보며 잠깐의 휴식을 즐긴다.

 

라디오를 끄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두서너 시간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한 번 놓친 끼니는 돌아오지 않는다던가. 저녁을 먹기 위해 또 주방으로 향한다. 하루 삼시 세끼 중 가장 밥다운 밥을 만들고 먹는 시간이다. 쌀을 씻어 안치고, 내일까지 먹을 두 끼 분량의 국이나 찌개를 끓인다. 마음이 내키면 생선을 한 마리 굽기도 하고 돼지고기 두루치기 같은 걸 하기도 한다. 먹기 위해 할애하는 가장 길고 분주한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할 일은 설거지만이 아니다. 걸레질까지야 아니더라도 청소기도 한 번 돌려 줘야 하고, 마른 빨래를 걷어다가 착착 갠 후 옷의 주인에 따라, 옷의 용도에 따라 분류작업도 해야 한다. 내일 할 일을 살피기도 하고 필요한 전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때때로 마사지도 해 주고 드라마도 한 편. 시계는 어느새 11시를 넘어 12시를 향해 가고 있다. 급한 원고 작업이 아니면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어 이렇게 끝난다. 사람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으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일의 거의 대부분을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이, 왼손잡이는 왼손이 한다는 사실 또한 비슷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과 커튼을 젖히는 것도 창문을 여는 것도 대부분 오른손이 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양치를 할 때도, 주방에서 물 한 컵을 따라 마시고 운동복을 챙겨 입을 때도 오른손이 분주하다. 현관문과 자동차 문을 여는 것도 오른손이고, 운전을 하고 주차를 할 때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오른손이 필요하다. 기구운동의 무게를 조절할 때도 러닝머신 속도를 조절할 때도 오른손이 먼저 나간다. 아침식사를 위해 채소를 다듬어 씻고 알맞게 자르는 일도 오른손의 몫이요, 설거지, 빨래, 청소에도 오른손이 없으면 안 된다.

 

책상에 앉으려고 의자를 빼는 것도, 버튼을 눌러 컴퓨터를 켜는 것도,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도 오른손이다. 라디오를 켜고, 냉장고 문을 열어 밥과 반찬을 꺼내고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고 숟가락 젓가락질로 일용할 양식을 입에 넣어주는 것도 오른손이다. 전기포트에 물을 받고 전기 스위치를 켜고 원두를 갈기 위해 그라인더를 돌리고 드리퍼에 필터를 넣어 커피를 내리는 일도 오른손이 한다. 저녁 성찬을 마련하느라 쌀을 씻어 안치고,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한 마리 굽기도 하고 돼지고기 두루치기 같은 걸 하는 것도 오른손이다.

 

틈틈이 전화를 걸고 받아주는 것도, 아침저녁으로 화장품을 찍어 발라주는 것도, 텔레비전 리모컨을 켜고 끄는 것도, 먹고 쓰고 입는 데 필요한 살림살이를 착착 정리해 주는 것도 다 오른손의 수고가 있어야 순조롭다.

 

오른손은 성미가 참 급하다. 손이 두 개이니 왼손과 나누어 하면 좋으련만, 때로는 모르는 체 딴청을 피워도 좋으련만 급한 일, 힘든 일, 궂은일일수록 오른손이 먼저 나온다. 찌든 빨래에 비누칠을 해서 싹싹 비벼 빠는 것도, 갓난아기의 똥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구석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것도, 크고 작은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것도, 마늘을 까고 파를 다듬는 것도 오른손이 한다. 그래서 오른손은 왼손보다 마디가 굵고 크고 거칠다.

 

그에 비해 왼손은 몸을 많이 사린다. 어찌 보면 좀 얌체 같기도 하다. 손톱도 오른손이 먼저 깎아 주고 매니큐어도 왼손이 먼저다. 결혼반지처럼 소중한 의미가 담긴 반지도 왼손 차지다. 오른손이 온갖 일을 다 하느라 낑낑거려도 왼손은 탱자탱자할 때가 많다. 어쩔 수 없이 물건을 함께 들어 준다든가 하면서 슬쩍 거들기도 하지만 그러고 나면 힘든 일을 했더니 손이 떨리네, 손목이 아프네 하며 엄살을 떨기 일쑤다.

 

그렇다고 해서 왼손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왼손도 억울한 게 많을 것이다. 오른손잡이로 길들여졌으니 오른손보다 힘이 약한 게 당연하고, 오른손만큼 무얼 많이 해 본 것도 아니어서 매사 서툴기 마련이지만 나처럼 색안경을 낀 사람들에게 미우네 고우네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예전에는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어른들 잔소리가 바가지로 쏟아졌고, 지금도 왼손으로 악수를 하거나 술잔을 받으면 예의범절을 모른다는 눈총이 맵다.

 

내 몸에 딸린 내 손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변덕스러운데 하물며 사람이야! 겪어보면 사람도 오른손 같은 사람이 있고 왼손 같은 사람이 있다. 자신보다도 남을 먼저 배려하고 돕는 사람,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두 팔 걷어붙이고 앞장서는 사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오른손 같은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최고라야 하고, 자신이 인정받아야 하고, 자신의 이득이 먼저라야 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왼손 같은 사람이다.

 

왼손도 왼손 나름이다. 부족하지만 오른손 못지않게 부지런한 왼손은 억울하다. 성실하게 노력해도 결과물이 늘 오른손 같은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왼손 같은 사람도 맥이 빠질 것이다. 왼손도, 왼손 같은 사람도 오른손만큼, 오른손 같은 사람만큼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왼손의 소망이 그러하다면 왼손은 먼저 오른손이 하는 일, 오른손의 수고를 알아야 한다.

 

잡아함경을 보면 원하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예를 얻고자 하면 계율을 지키고, 재물을 얻고자 하면 보시를 행하고, 덕망을 얻으려 하면 진실한 삶을 살고, 좋은 벗을 얻고자 하면 먼저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라는 말씀이 있다. 오른손의 수고가 오른손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것처럼, 스스로 먼저 행한 공덕이 있어야 오른손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오른손만큼, 오른손 같은 사람만큼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왼손은, 왼손 같은 사람은 더 부지런해지고 더 성실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