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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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물은 낮은데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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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6-20 14:33 조회3,1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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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선거에 이어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열기 못지않게 들끓는 불협화음에 문득 몇 년 전 일이 떠오른다. 평화롭던 동네에 전무前無했던 일들이, 후무後無 해야 할 일들이 어떤 제동장치도 없이 속속 이어지면서 파란波瀾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는 소식이었다. 둘이든 셋이든 동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에 황황해 하면서 가공할 만한 일련의 사태에 분개하고, 그 작은 동네의 퇴행과 암울한 앞날을 염려했으며, 불화와 분란의 핵심에 있는 새로운 이장 K의 독단과 아집을 성토했더란다.


 경쟁자의 사퇴로 인해 어부지리 격으로 동네일을 맡게 된 K는 취임 인사를 통해 막중한 소명감을 갖고 신명을 바쳐 일할 것을 엄숙히 다짐했다고 한다. 화합과 통합을 위해 대화하고 협력하며 끊임없이 소통하겠다, 주민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하나로 모아 행복한 동네를 만들겠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모두 쏟아 주민들의 기대와 성원에 부응하는 맑고 청렴한 일꾼, 따뜻하면서도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일꾼이 되겠다면서 말이다. 웬만한 지자체장 못지않은 거대한 포부와 다짐은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기대와 믿음으로 한껏 설레게 했다.


 하지만 옛말이 그르지 않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것이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그로부터 수개월이 흐르는 동안 K가 한 일이라고는 윤흥길 선생의 소설 <완장>에 등장하는 저수지 감시인처럼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행태뿐이었단다. 도시물 좀 먹고, 가방끈 좀 길다고 해서 툭하면 도시에서는 말이에요, 배운 사람들은 말이지요, 하면서 어깨에 힘깨나 주었던 터라 애초부터 K를 탐탁지 않아 했던 주민들은 물론이려니와 도시 사람들 못지않게, 배운 사람들처럼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장하겠노라는 거창한 출사표에 혹해 K에게 표를 던졌던 주민들도 날로 더해지는 K의 횡포에 머리를 싸매고 누울 지경이었다는데.


 K 자신은 동네의 개혁과 발전을 위한 일인 만큼 주민들의 비난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며 희생양을 자처했다지만 중립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 않은 그의 행보는 파행이 아니라 전횡에 가까웠다. 특히나, 공과 사가 엄격해야 할 동네일을 처리할 때도 자격 미달인 사돈의 팔촌까지 두루 특혜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 과정에서 눈엣가시 같았던 사람들의 일거리를 빼앗아 넘겨주는 일도 속출했다.


 무슨 대통령 선거라도 치른 것처럼 자신을 도왔던 최측근을 위해 없던 자리를 새로 만들고, 공모 형식을 갖추기는 했으나 그 자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Y를 그 자리에 앉혔다. 한 개인을 놓고 보면 그럴만한 소양을 갖춘 사람 일지도 모르겠으나, 글쎄다. 그 모든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세간을 어지럽히던 그들로부터 흘러나왔을 게 분명한 소문의 진원지에서 풍기는 구린내는 많은 사람들을 배신감과 박탈감에 떨게 했다.


 뿐인가. 동네에서 오랫동안 이어오던 이런저런 마을 행사를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고, 동네 사람들이 꾸려가는 소소한 모임에 대한 지원도 예산 절감을 내세워 반 토막을 냈단다. 잘사는 동네를 만들겠다더니, 해를 거르지 않고 잘 따오던 이런저런 지원 사업 공모에 번번이 떨어지면서도 전임자에 대한 비방은 봇물 세례였고, 주민들이 오며 가며 들르기 편하라고 회관 입구에 마련했던 소박한 사무실도 볕 잘 드는 2층 널찍한 곳으로 옮겨 번쩍번쩍한 집기로 새 단장을 마쳤단다.


 후안무치하게 거듭되고 있는 보은報恩과 보원報怨 사례로 온 동네가 때아닌 파벌과 암투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주민들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많은 일들의 십중팔구가 K의 독단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주민들이 어떤 문제를 지적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라도 하면 무슨 위원회니, 무슨 전문가니 하는 사람들과 검토를 하고 검증을 거쳤다며 두 말도 못 하게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K가 내세우는 무슨 위원회나 무슨 전문가를 본 적도 없었고, 모임의 대부분이 비공개로 열린 탓에 그런 모임의 말석에라도 앉아본 적이 없었다.

 

 결국 K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이장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지만…. 

나랏일이든 어느 지자체 일이든 하다못해 작은 동네일이든, 공정성과 민주성, 효율성의 원칙을 무시하고, 공정성과 투명성마저 외면한 행태에 많은 이들이 공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디에나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는 있는 모양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을 확신하던 어느 지자체장이 본선은커녕 후보 공천에서 컷오프 됐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반성과 성찰, 변화와 혁신 없는 권력의 남용이 불러온 그의 추락이 부디 정의로 향하는 이정표가 되어 주길. 그릇이 작은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없다는 장자의 말처럼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넣을 수는 없는 일. 짧은 두레박줄로 깊은 우물물을 어찌 퍼 올린단 말인가. 그릇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이다. 그릇이 작고 크다는 것은 배움의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에 달려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했다. 작은 것을 욕심내다가 큰 손실을 입는다는 이 말을 잘 알면서도 작은 것을 버리지 못해 오히려 큰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참 많다. 눈앞의 명예에 연연해서,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는 떡이 아까워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에 취해서 타협하고 야합한다. 그것을 얻기 위해 간도 쓸개도 빼고 양심도 판다. 선거철이면 뭇 갑남을녀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존경과 사랑을 바치는 그들의 진심이 의심받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가장 못난 사람은 타인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고, 가장 좋은 사람은 자신을 희생해 타인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자리든 이번에는 부디 사람 위에 군림하지 않고 영광에 겸손하며 부지런히 일하는 충직한 공복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상의 가치를 ‘성실, 자기 절제, 관대함, 인내심’이라고 했다. 지도자는 여기에 도덕적 청렴성과 냉철한 분별력, 공정한 균형 감각, 강한 추진력과 책임감을 더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완성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선택받은 그들의 몫이기도 하지만 선택한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서릿발 같은 응징으로 고쳐야 하고, 잘한 선택이었다면 아낌없이 격려하며 북돋아 줘야 한다. 『발심수행장』의 말씀처럼, 선택받은 그들이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그래서 우리 앞에 놓인 이 새로운 시작이 부디 희망으로 가는 길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