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뜨락 | 전생에 스님이었다는 구자홍 회장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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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5-27 15:47 조회2,77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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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연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 인연 가운데 가슴으로 머리가 숙여지는 인생의 스승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나에게 그런 인연이 있었다. 2011년 조선일보에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 80호를 어렵게 이끌어온 방귀희’라는 기사를 보고 연락을 주셔서 처음 뵙게 되었는데 회장님께서는 약속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배려가 깊으셨다. 내가 일하는 여의도로 오셨다. 그때 동석자는 직원이 아닌 사모님이셨다. 발달장애인화가가 그린 엽서를 드리자 너무 예쁘다고 하시며 손녀에게 주겠다고 진심으로 좋아하셨다.
그 후 1년에 한번씩 종교와 철학 저서를 쓴 작가들과 LS미래원에서 저녁을 하며 저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길벗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단 한사람을 위해 LS미래원 이동 경로 곳곳에 경사로를 설치해주어 나를 감동시켰다.
회장님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솟대문학>에 이어 <E美지>에 협찬 광고로 가난한 잡지를 후원해주셨다. 책을 보내드리면 그 바쁜 가운데도 꼼꼼히 읽고 장애예술인에 대해 말씀하시어 나를 놀라게 하셨다.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시는 분이었다. 2017년 <E美지> 5호에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흔쾌히 응해주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가족이라 집안 모임이 많았는데 그때 아이가 보이지 않아서 찾아보면 서재 구석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은 어린 구자홍은 생각이 깊었는데 그런 손자를 보고 외할머니는 전생에 스님이었을 것이란 말씀을 하실 정도로 불교적 성향을 갖고 계셨다.
길벗 모임에는 스님, 신부님, 목사님 등 각각 다른 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를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말씀해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설사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충돌하는 일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회장님은 그 다양한 이야기들을 경청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마워하셨다.
명성스님 평전 <명성>이란 책을 읽고 스님이 계신 경북 청도 운문사를 사모님과 함께 갔었는데 스님께 연락을 드린 것이 아니어서 그냥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사모님과 책에 나오는 명성스님 얘기하며 참선을 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이렇듯 상(相)을 내세우지 않고 늘 겸손하게 조용히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약자에 대한 마음도 남달랐다. 초등학교 때 손가락 세 개가 없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것을 놀려서 그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린 구자홍은 그 친구와 단짝이 되었다. 그 친구는 할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그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가 가장 맛있었다며 그때 할머니께서 해주신 멸치를 넣은 김치찌개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장애인 분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도 하셨다. 저렇게 노력하며 열심히 사는데 우리 사회가 그분들을 제대로 대우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다며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모님과의 러브 스토리는 더욱 감동스럽다. 사모님은 7살 때부터 왼쪽 귀의 청력이 떨어져서 왼쪽에서 하는 얘기는 그 내용을 3~40% 정도 밖에 파악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구회장님이 반드시 왼쪽에 앉아 왼쪽 편에서 하는 이야기 내용을 아주 작게 전달해주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었다. 두 분은 미국 유학시절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만났는데 회장님이 사모님께 첫눈에 반해 작업을 걸었다며 그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하신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웃으셨다.
20대 아가씨 눈에도 청년 구자홍의 진정성이 보였던지 자신은 왼쪽 귀가 약해서 오른쪽에서 말을 해줄 것과 오른쪽에서 큰소리가 나면 많이 놀란다고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다른 친구들에게도 해주었지만 바로 잊어버리고 자기 습관대로 행동했는데 청년 구자홍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왔던 사람처럼 아주 능숙하게 자신을 배려해주었다며 역시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나는 그날 이후 구자홍회장님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에 대기업 재벌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E美지> 인터뷰 기사 제목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독서왕 LS니꼬동제련 구자홍 회장”처럼 회장님은 정말 책을 즐겨 다독하신 독서왕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신 우리 사회의 진정한 지식인이다. 기업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보살펴준 선지식인(善知識人)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