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 재가자는 어떻게 불법을 실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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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2-13 11:25 조회3,74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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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불괴정과 보시 2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들에 있어서 수행의 기본이 되는 것은 사불괴정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불괴정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과 계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혜를 갖추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자비심을 베풀 것과 함께 언제나 지혜를 밝힐 것을 강조하시고 그 지혜는 노력 정진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재가불자는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믿으며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는 것을 백정신심(白淨信心)이라고 합니다. 티 없이 깨끗한 믿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신심의 바탕 위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되 받아 지녀서 실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부처님께서는 우바새가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배우며 오계를 지키는 것 이외에도 재가신자로서 보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일러 우바새가 보시를 완전히 갖춘 것이라고 합니까? 인색한 번뇌에 얽매이면 그 번뇌를 여의고 집을 떠나 살면서 걸림 없는 보시[해탈시], 부지런한 보시[勤施], 늘 하는 보시[常施]를 닦고 재물을 즐겨 베풀며 평등하게 보시하는 것을 일러 우바새가 보시를 완전히 갖춘 것이라 한다.
재가신자의 실천덕목 가운데에는 보시가 매우 중요합니다. 보시는 다나(dāna)라고 하는데, 한문으로는 단나(檀那), 혹은 단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재가신도를 ‘보시하는 사람’, 혹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단월(檀越;dāna-pati)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보시는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를 위하여 보시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보시입니다.
보시는 반드시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물질적인 보시가 위주가 됩니다. 재가자의 일상생활은 늘 재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물질위주의 시대가 되어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에 혈안이 되어 심지어는 부모와 배우자까지도 살해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사회가 이렇게 살기 어려워진 것도 모두 베푸는 마음이 없이 가지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수록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꼭 필요한 것만 가져도 세상이 이렇지는 않을 것인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물자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많은 것을 가지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가 바라는 것이 충족되면 그것으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전세 살면서 자기 집 한 채 가지는 것이 소원이다가 조그만 집이라도 하나 마련하게 되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잠시 뿐입니다. 곧 돌아서서 더 큰 집을 못 가져 안달입니다. 우리 범부 중생들은 평생을 이러고 사느라 잠시도 행복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아 가면서도 이를 악물고 돈 벌어서는 죽을 때 자식들 싸움만 시켜 놓고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결코 재물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베푸는 마음으로 살면 그 순간 행복이 찾아옵니다. 세계 최대의 갑부라고 자부하던 록펠러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베푸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순간 행복해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보시에 힘쓰게 되면 탐심을 다스리게 되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탐심으로 인해서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괴롭고 화가 납니다. 이것이 번뇌입니다. 보시는 탐심을 다스리기 위해 욕구를 충족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오히려 재물을 베풂으로써 탐심을 없애는 것입니다. 탐심이 없어지면 괴롭고 화날 일도 없습니다. 시론, 계론, 생천론의 삼론에서도 보듯이 보시는 재가자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수행이며 불도에 입문하는 첫걸음에 해당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재가자들을 불도로 입문시킬 때는 먼저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다음 계행을 잘 지키면 누구나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삼론이라는 것입니다.
인색하고 탐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어떠한 선행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인색하고 욕심내는 마음을 버릴 때에 집착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보시는 남을 위하는 길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보시는 부처님 당시부터도 권장되는 재가자들의 덕목이기도 했지만 대승불교로 오면서 바라밀행이 강조될 때에 보시바라밀은 가장 먼저 실천해야할 덕목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베푸는 마음이 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푸는 마음을 지녀야만 탐욕에서 오는 번뇌를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켜 훔치거나 빼앗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망치기 때문에 탐내는 마음을 거꾸로 돌려 베푸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보시는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재능을 베풀고 힘이 센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남을 도울 수 있으며 그도 저도 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남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나 미소 한 자락으로도 보시행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