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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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9-05 15:58 조회2,01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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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지인의 부탁으로 2박 3일 묵을 숙소를 알아보게 됐다. 극성수기도 지났고 주말도 아니라 그리 어렵지 않겠거니 했는데 웬걸? 바닷가 펜션은 물론 민박도 초만원인데다 가격도 상상 이상이다. 바닷가를 벗어나면 좀 여유가 있겠지 했던 생각에도 비상이 걸렸다. 계곡을 따라 즐비한 펜션도, 민박도 빈 방이 없을 뿐 아니라, 취사시설이 없다거나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한다거나 건물이 낡고 외져서 외면당했음직한 몇 곳도 부르는 게 값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방이 남아 있는 곳의 요구사항이었다. 2박이긴 하지만 1박을 한 다음날 아침 일찍 방을 비우라는 것이었다. 낮에 방에 있으면서 에어컨을 틀면 전기세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설이 열악한 거야 시골 정취를 맛본다는 자기 위안도 되겠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에, 주인의 기고만장까지 참아낼 까닭이 없다.
하루 종일 차를 몰고 다니며 발품을 판 끝에 간신히 숙소를 구하기는 구했다. 바닷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산속에, 지인이 부탁한 대로 거실과 방이 있는 펜션이 아니라 민박의 작은방 두 칸을 꽤 비싼 가격에 말이다. 전화로 지인의 동의를 얻은 일이고 지인도 다행이라며 고마워했지만 돌아오는 내내 마치 내가 바가지라도 씌운 것처럼 미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더 많은 날을 빈 방으로 놀렸으면서, 그리고 똑같은 방을 내어주면서 성수기라고 해서 돈을 더 올려 받는 건 무슨 논리인지 납득이 잘 안된다. 이용객이 많은 덕분에 모든 방을 하루도 쉬지 않고 손님을 받았다면 그로써 만족하고 감사할 일일 텐데 가격을 올리는 것도 모자라 더러는 갑질을 일삼는 주인들도 없지 않으니 말이다. 올해는 바가지 상혼을 잡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팔을 걷고 나섰다지만 아직도 한 달 벌어서 1년을 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걸 보면 그만큼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얘기 같다. 과장된 말이겠으나 얼마나 많은 폭리를 취하면 한 달 만에 1년을 해결할 엄청난 수입을 올리겠는가.
낯 뜨거운 일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됫박만한 방을 탓하기는커녕 더운데 고생했으니 식사라도 함께하자는 지인의 청도 있었고, 나 역시 반가운 사람에게 저녁 한 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아는 횟집에 예약을 했다. 횟감도 싱싱하고 곁들이 음식도 푸짐한 데다 주인 내외가 친절하고 싹싹해서 가끔이지만 즐겨찾는 집이었다. 하지만 발등은 믿는 도끼가 찍는다던가. 예약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아서 그 더운 날, 푹푹 찌는 더위를 견디며 바깥에서 30분을 기다려야 했으며, 치워지지도 않은 자리에 앉아 20분을 더 기다려서야 주문한 음식을 배식(!) 받을 수 있었으니. 나까지 어른 다섯 명에 초등학생이 둘이라 모둠회를 왕특대로 부탁했는데 양은 평소의 특대 사이즈나 될까 말까, 젓가락질하기가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생선회 못지않게 환영을 받던 멍게, 소라, 생선구이, 새우튀김, 생선초밥 같은 주연급 곁들이 음식이 사라진 식탁 위에는 묵은 김치와 해초무침, 고추장아찌, 오이 피클, 옥수수 샐러드, 메추리알, 상추와 마늘 고추가 고작이다. 상추 몇 장을 더 주면서 3천 원 추가요금을 받고 소주나 맥주도 6천 원씩이나 올려 받으면서 옥수수 샐러드를 더 먹고 싶다는 아이의 청에 세 번씩이나 부탁을 했건만 공짜라 그런지, 무책임한 아르바이트생이라 그런지 네네 대답만하고 감감무소식이다. 아이는 입이 나오고, 유쾌할 수 없는 분위기에 나는 그만 죄인이라도 된 양 좌불안석일 수밖에.
지인을 등 떠밀어 내보내고 계산대로 가니 그제야 주인이 아는 체를 한다. 금방 부자가 되겠다는 내 말에 주인은 코로나19 때문에 손해 본 일이며 인건비, 식재료비가 너무 많이 올랐다는 얘기를 변명처럼 늘어놓는다. 단골이니 상추 값 3천 원을 빼 주겠다는 선심에, 다음에 오면 잘 해주겠다며 문밖까지 따라 나와 인사를 했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들끓는 지금 같은 때, 박리다매로 매상도 올리고 손님들에게 후한 인상을 남기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일이다. 하지만 그저 사람 구경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코 빠뜨리고 있던 얼마 전의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많이 팔고 더 많이 남기겠다는 얄팍한 심보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여름 특수를 누리는건 좋다. 그러나 모처럼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비겁하다. 제 멋에 겨워 스스로 제 무덤을 판다지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입장이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지는 게 사람인가 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잇속 챙기기에 급급해지는 모양새가 마치 정해진 코스 같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치솟는 집값이 서민들 등골을 빼먹는다며 분노하면서 갭 투자로 부를 쌓는 투기꾼과 이를 수수방관하는 정부를 맹비난한다. 그러다가 막상 작은 집이라도 장만하게 되면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고, 오른 집값에 환호하고, 그 집을 발판 삼아 갭 투자에 팔을 걷어붙인다. 간절한 소망을 욕심으로 바꾸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민원을 빌미로 해당 기관이나 담당 부서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를 해대고 사무실까지 출두해 고래고래 언성을 높이는 사람이 있었다. 잦은, 그리고 격한 언행에 비해 그의 민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많았는데 특이하게도 종류 불문, 인쇄물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했다. 글자가 틀렸네, 어디가 잘못됐네, 작은 것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자질 부족이다, 근무 태만이다 하며 담당자를 닦달하기 일쑤였다.
시달리다 못해 담당자가 민원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문서로 보내 줄 것을 정중하게 부탁했더란다. 그런데 그가 보내온 답신이 놀라웠다. 엉망진창인 맞춤법으로, 뒤죽박죽인 문장으로 조목조목 잘못을 지적하고도 모자라 인신공격성 전화를 멈추지 않는 그에게 담당자가 물었다. 선생의 글에는 왜 그렇게 틀린 게 많으냐고.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사적인 글인데 틀릴 수도 있지 뭘 따지냐고,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고. 당당한 그의 목소리에 담당자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나.
정치권의 아전인수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소수 정당일 땐 다수 정당의 독재를 비난하지만, 다수 정당으로 자리를 바꾸어 앉게되면 준엄한 민심 운운해가면서 자신들이 비난했던 다수 정당의 독재를 답습한다. 힘이 생기면 얼굴도 두꺼워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이라는 본분조차 까마득히 잊히는 모양이다. 민생보다 당리당략이 우선이고 야합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권 다툼도 마다하지 않으니 말이다.
『법구경』에 ‘논밭은 잡초의 해침을 받고, 사람은 탐욕과 성냄,어리석음의 해침을 받는다.’라는 말씀이 있다. 오늘 나를 해치고 있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어지럽히는 일은 아닌지…. 묻자, 그리고 답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