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 | 싸우지 말아요 (콜레우스 - Flame ne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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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3 13:51 조회5,44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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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말아요 (콜레우스 - Flame nettle)
피부색은 그저 피부색일 뿐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피부색이 존재합니다. 거칠게 구분하면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이렇게 세 가지 피부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세 가지 색이 섞이고 섞여 딱 한 가지로 얘기할 수 없는 수많은 피부색이 만들어졌습니다.
문득 어릴 적 들었던 피부색에 대한 우스갯소리 하나가 생각납니다. 하느님이 흙을 빚어 사람들 만들었는데, 빚은 다음 가마에 넣고 구울 때 너무 구운 사람은 흑인, 덜 구운 사람은 백인, 적당히 구운 사람은 황인 되었다는 이야기.
정말로 사람의 피부색이 이렇게 정해진 것이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피부색을 보며 덜 구워졌네. 더 구워졌네. 놀렸겠지요. 하지만 사람의 피부색은 그런 방법으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인의 또 다른 종교인 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사람 몸에 있는 멜라닌 색소의 많고 적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멜라닌 색소가 많은 사람 일수록 피부색이 짙어지고, 적은 사람일수록 옅어질 뿐이지요.
색깔 전시회에 초대합니다
콜레우스는 고향인 열대, 아열대 지역에서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추운 겨울이 있는 곳으로 오면서 한해살이풀로 바뀌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리니 자연스레 생태가 바뀐 것이지요.
콜레우스를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보다 형형색색의 잎입니다. 콜레우스는 초록, 빨강, 분홍, 보라, 노랑을 비롯해 다양한 색깔을 우리에게 선보입니다. 너무나 선명한 잎들의 색깔이 때로는 물감을 칠해 놓은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게 할 정도지요. 하지만 콜레우스가 보여 주는 색깔이 단지 도화지에 칠해진 크레용 색깔처럼 단순했다면 아마도 그건 큰 매력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콜레우스의 진짜 매력은 분명 같은 색이건만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과 꾸물꾸물 구름이 낀 날, 혼자 있을 때와 무리 지어 있을 때, 밝은 색 화분에 있을 때와 어두운 색 화분에 있을 때, 콜레우스끼리 모여 있을 때와 다른 식물과 함께 있을 때 저마다 색깔이 다릅니다. 초여름에서 가을까지 열리는 콜레우스의 색깔 전시회를 보다 보면 자연이 만들어 낸 색깔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지 세상 감탄하게 됩니다.
잎은 잎, 꽃은 꽃
콜레우스에게 꽃의 존재는 미미하기만 합니다. 잎이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연 배우라면 꽃은 이야기의 빈틈을 메워주는 조연 배우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잎을 위해 꽃을 잘라 버리기도 합니다. 꽃으로 갈 영양분을 잎으로 가게 해서 더욱 멋진 잎을 만들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단지 한 철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식물의 본능을 거스른다는 게 그리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잎의 ‘화려함’을 보려고 꽃의 ‘평범함’을 잘라 내느니 그냥 콜레우스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콜레우스의 학명인 ‘Coleus’도 실은 수꽃술의 모양을 뜻하는 그리스어 ‘Koleos[칼집]’에서 나왔습니다. 잎을 보겠다고 꽃을 무시해 버리기에는 아무래도 콜레우스에게 미안합니다. 모두 다 어깨동무 아이들에게 숲속을 그려 보라고 하면 거침없이 크레용을 집어 듭니다. 마치 머릿속에 숲이 들어 있기라도 하듯이 금세 나무며 풀을 그려 나갑니다. 잠시 후 도화지 위에는 현실의 숲과 상상의 숲이 함께 어우러집니다. 그 속에는 어느 하나같은 모양의 나무도 없고 같은 색깔의 풀도 없지만, 모두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룹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아이들만의 숲입니다.
그런데 그 숲 한가운데를 가만히 살펴보면 큰 나무들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키 작은 콜레우스가 눈에 뜨입니다. 아이들은 과연 콜레우스를 알고 그린 걸까요? 물론 그랬을 리 없습니다. 단지 아이들 마음속에 콜레우스가 들어와 있을 뿐이지요. 아이들이 본 콜레우스는 그 잎이 빨간 색이든 초록색이든, 크든 작든, 무늬가 있든 없든 모두 다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게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답다는 진리를 콜레우스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천 년 만 년 살려고 애쓰는 우리 인간은 일 년만 살고 세상을 떠나는 콜레우스보다 훨씬 단수가 낮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게 우리 인간이니까요.
식물들이 볼 때는 쓸데없는 이유로 지금도 어디선가 싸우고 있을 인간들. 그들 앞에 조그만 콜레우스 화분을 하나 건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