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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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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2-01-01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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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4 08:58 조회 1,8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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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 모두의 행복과 세계평화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옛 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는 말이 있다. 작년 한 해는 테러다, 보복전쟁이다, 부정부패다, 조폭… 등등해서 그 어느 해보다도 유달리 국 내외적으로 크게 시끄러웠다. 가지 많은 나무들이 한 나라에, 또 세계 도처에 수없이도 많으니 조용한 날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일 듯 싶다.

지금,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참다운 교육자는 거의 없고 지식판매원들만 득실거리며, 백성을 생각하며 밤새워 고뇌하는 정치가는 찾아 볼 수 없고 당리당략이나 일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정상모리배들만이 들끓으며, 이 사회나 국가경제를 먼저 생각하는 경제 안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자신의 재산 불리기에만 혈안이 된 장똘뱅이들만 우글거리며, 진정한 종교지도자는 만나보기가 어렵고 복빌기 대회나 주선하여 도로 중생의 탐욕심 에 불이나 붙여 자신의 부를 축적해 가는 또 따른 형태의 장삿꾼들만이 판치는 아슬 아슬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중생, 그것도 지독한 중생들이 이렇게도 많이 모여 사니 어찌 복잡하고도 시끄러운 일 들이 한 찰나라도 없을 수가 있을까마는, 각자 그러한 문제들로 해서 불안하고도 괴로우 니까 조금이라도 벗어날 길이 없을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안으로 각 시대 각 나라마다 법이나 제도 등을 많이 또 복잡하게 만들어 시행해 보지만, 사태들이 전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갈수록 정도가 더욱 심해져만 가고 있다.

어쨌든 저러한 안타까운 교육자나 한심한 정치가나 지독한 경제인이나 웃기는 종교인 들도 모두 이 나라의 백성들이 낳아 기른 이 나라의 백성들이다. 그들은 거의 모두가 정 , 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과 권력에 환장한 부모들 밑에서, 부와 벼슬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 법을 가리지 않아야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가정교육을 받으며, 그것들을 쟁취하기 위해서 경쟁을 넘어 전쟁에 가까운 학교교육을 강요받으며 성장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 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재관위주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갖게 되며,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보다는 대개 목에 힘주고 큰소리치며 무조건 자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무 서운 인간으로 되어버린다. 또 그들은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살았으므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도 없이 자기자식의 교육도 또한 그렇게 더욱 열심히 시켜 나간다. 이러한 악순환이 끝없이 계속되면서,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고 불안해하며 서로를 불신하고 투쟁하며 자타공멸의 길로 흘러가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테러, 전쟁, 폭력, 부정부패 등의 형태로 나타나 우리 모두를 불안과 공포 속에서 떨게 하는 것 이다. 대체 그 사건들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들을 해결할 무슨 묘안은 없는 것일까? 사실, 그것들의 근본 문제점들은 무엇이며, 그 근본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2500년 전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모두 말씀해 놓고 있다.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여 제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그 분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중생들의 모든 문제 는 탐 . 진 . 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해결방법은 정법을 바르게 알아서 그것을 없애나가는 수행을 각자가 그대로 실천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자연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이 진리만큼은 변할리 없다. 기실 인간들의 모든 잘못된 문제들의 가장 밑바탕에는 탐 . 진 . 치가 깔려 있으며, 그것을 벗어나 있는 문 제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문제점들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수행을 통해 개개인이 그것들을 조금씩이나마 지워가는 길 밖에 없다. 어떤 절대자에 대한 기도만으로는 결코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 누구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세계에서 기도를 가장 열심히 하는 중동지역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일부러 굶어가며 절대자에게 기도해서 과연 남는 것이 무엇이던가? 문제점들은 스스로 해결해야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지, 먹연한 어떤 절대자에게 부탁하거나 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점들은 바로 자기의 마음에서 연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구원은 자기구원이지, 절대자에 의한 구원이 아닌 것이다. 만약 절대 자가 꼭 있어야 된다면, 각 개인 스스루가 절대자가 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이러 한 진정한 구원, 곧 자기구원이 바로 불교의 해탈이다. 개개인이 자신의 탐 . 진 . 치를 스스로 지워나가는 해탈의 길을 걸어갈 때, 걸어간 만큼 그 개인 그 사회 그 나라, 나 아가 이 세계는 꼭 그 만큼만 자유롭고도 편안해질 것이다. 비유하자면, 한강 주변의 사람 들이 각자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할 때, 꼭 그 만큼만 한강물이 깨끗해질 수 있듯이…, 절 대자에게는 한강물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아무리 기도해 올려도 안 되듯이…. 개인 스스로가 탐 . 진 . 치를 없애나가 정화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이승에서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저승에서는 결코 극락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생경한 철학적 사변이나 허황한 종교적 구원을 넘어 정법에 의한 불교 적인 득도의 세계로 들어설 때 곧 모두가 불교적 수행자가 될 때, 그 때 비로소 우리 인류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찾아 그것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그 모임인 인류나 우리의 행복과 평화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바로 불교의 수행에 있다는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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