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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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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4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3-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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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3-10 15:09 조회 4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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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총지로 여는 삶 (5회)

존재의 무게

나와 일체중생들의 존재감은 얼마쯤일까요?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생이야기가 제게는 퍽 인상적입니다. 부처님이 전생 수행자일 때,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도움을 구했습니다. 잠시 후 이번에는 매 한 마리가 날아와 새를 사냥하지 못하면 자신이 굶어야 하니 새를 내놓으라고 말했습니다. 누구 편도 들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부처님은 당신의 살을 매에게 대신 주어 매와 참새를 둘 다 살리는 희생적인 묘안을 마련하셨습니다.


계량은 정확히 해야 하니, 수평저울을 놓고, 한쪽 접시에 참새가 올라가고 다른 쪽 접시에는 부처님의 살을 베어 올렸습니다. 팔뚝 살을 듬뿍 베어 이 정도면 남겠지 하였지만 저울은 그대로. 다시 반대편 팔뚝 살, 종아리 살, 허벅지 살, 차례로 베어 올려도 꿈적도 하지 않다가, 온몸의 살을 다 베어 올리고서야 마침내 수평을 이루었답니다. 물리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들이 수용하기에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참새의 존재의 무게와 한 인간의 존재의 무게가 동등하다는 비유로는 이보다 지혜로운 이야기가 없는 듯합니다. 

  

고려의 학자 이규보 선생도 그의 수필 슬견설(虱犬說)에서 비슷한 견해를 보입니다. 어떤 손님이 찾아와 사람들이 개를 죽이는 장면을 보고 너무나 끔찍하더라고 하니, 주인은 어떤 사람이 이를 잡아 화로에 넣는 모습을 보니 끔찍하더라고 응대합니다. 자신을 놀린다고 화를 내는 손님에게 주인은, 겉보기로는 크고 작고, 중요하고 사소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생명이라는 존재의 가치는 서로 다르지 않으며, 목숨이 붙어있어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은 인간으로부터 미물에 이르기까지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생태학자들도 비슷한 견해를 보입니다. 예전에는 생태계에는 환경의 위험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생물종이 따로 존재하니 이 종을 지표로 삼아 생태 환경을 감시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주춧돌이론’이 주류 이론이었는데, 지금은 비행기의 동체를 고정하는 리벳 못이 하나씩 빠지다가 어떤 순간이 되면 전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생태계도 한 종씩 사라지다 보면 어떤 순간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가 오니 어떤 종이라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는 ‘리벳못 이론’이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답니다. 


한편, <삼국유사>의 ‘사금갑(거문고갑을 쏘라)’ 이야기에서는 반대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신라의 21대 비처왕(또는 소지왕이라고도 함)이 사냥을 나갔을 때, 쥐가 사람의 말을 하며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연못에서 나온 노인을 만나 편지 한 통을 받습니다. 겉봉에는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쓰여 있어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게 낫지 않을까’ 왕은 망설입니다. 일관(日官, 하늘의 변이로써 인간의 길흉을 점치던 관원)이 “두 사람은 서민이고, 한 사람은 왕입니다.”고 아뢰니 결국 편지를 열어 보고, 급히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갑을 쏘아 그 안에 숨어 있던 승려와 그와 내통하여 역모를 꾀한 왕비를 죽이고 나라를 지킵니다.


아마도 이야기에 등장하는 까마귀, 쥐 등은 서민들을 일컫는 표현일 것이며, 여러 정황을 보건데 상황에 대한 정보를 왕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며, 언제 어떤 방법으로 왕에게 알릴 것인가를 궁리했던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어떻든 이 이야기에서는 왕과 서민의 존재의 무게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이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모를 리 없고, 일체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한다면, 이 이야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더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 중에도 뇌세포와 각종 장기의 세포 또는 피부세포가 그 역할과 중요도가 다 다른 것처럼, 사회조직에서 수장의 역할과 중요도는 말단의 역할과 중요도와 구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사회는 그동안 결핍과 광기와 전쟁의 시련을 견디며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유래 없는 속도로 이룩했지만, 사회적 소속감의 결여와 미래 생존에 대한 개인적 불안은 더욱 높아져 있습니다. 


나를 볼 때, 타인을 볼 때, 조직내의 위상으로 볼 때, 조직 자체의 존재성을 볼 때, 그 모든 존재의 무게를 지혜롭게 따지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개인과 전체의 짜임에 따른 무게의 배분을 깊이 고려하고 또 고려하는 신중함만이 누구도 불만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판단으로 이어져 마침내 화합으로 수렴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처처불공하는 총지종도의 정진력과 수행력이 현세정화의 지혜로 빛을 발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합니다. 옴마니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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