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새삼의 더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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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0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12-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이상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자유기고가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12-09 14:22 조회 82회본문
실새삼의 더부살이
일주일에 한 번꼴로 탄천과 경안천을 걷고, 한 달에 한 번은 여주의 남한강을 몇 곳 둘러봅니다. 숲해설을 배운 덕에 서로 어우러져 변화하는 풀과 나무의 모습을 좀 더 눈여겨봅니다. 계절에 따라서도 꽃과 잎의 모습이 달라지고 해에 따라서도 더욱 눈에 많이 띄는 풀과 꽃이 있습니다. 올가을에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풀은, 황금빛 덩굴로 초록 바탕 위에 빛을 뿜는 듯 드문드문 나타나는, 실새삼이라는 이름의 기생식물입니다.
시작은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부터입니다. 싹을 틔운 뒤 덩굴을 뻗어 옆에 있는 식물의 줄기를 붙잡으면, 땅으로 연결된 자기 줄기를 버리고 숙주 식물의 줄기를 감싸고 그 줄기에 빨판을 꽂아 영양분을 섭취하며 덩굴을 뻗어 성장합니다. 따로 광합성을 하지 않으니 잎은 발달하지 않고, 엽록소도 필요 없어 노란색 줄기만 겹겹이 자라서, 마침내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꽃을 피우고 생각보다는 꽤 큰 열매도 맺습니다.
한방에서는 이 열매를 토사자라 하여 간과 신장을 보하고 남자의 정력을 돋우는 약으로 써 왔다고 합니다. 주로 콩과 식물, 벼과 식물에 기생하는데, 작년에는 쑥대를 휘감은 실새삼이 보이더니 올해는 환삼덩굴을 덮고 있는 실새삼의 무리가 자주 눈에 뜨입니다. 기생이라는 이름대로 숙주식물의 영양분을 나눠먹으므로 숙주 식물의 생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니 농업하시는 분들에게는 해충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어울림 속에서 나눔과 행복의 메시지를 발견하려는 감성숲해설가로서는 인간 중심적 효용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식물 상호간의 관계성 자체에 눈을 둡니다. 첫째로는 실새삼이 숙주식물의 영양을 대가 없이 빼앗아 먹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동성이 약한 식물들의 위로 넓게 줄기를 뻗어 식물간의 소통을 위한 통신선 역할을 한다니 나름 밥값을 하는 셈입니다. 둘째로는 숙주식물이 죽으면 기생식물 역시 생존할 수 없으므로 숙주식물이 말라죽을 정도로는 번성하지 않으며, 숙주식물보다 더 빨리 열매를 맺고 생을 마감한다니, 아주 염치가 없지도 않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기생이라는 이름보다는 더부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쩌면 생명이 없어 보이는 돌과 흙과 물과 공기까지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무시이래로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오는 동안 주고 받은 영양분이 얼마나 많을 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이기심으로 보면 주는 것은 손해요, 받는 것은 이익이겠지만 입양된 아이가 새로운 부모를 의지하는 동안 부모에게는 오히려 힘과 용기를 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보시로 서로에게 진 빚을 갚고, 또 기꺼이 서로에게 의지하여, 혼자가 아니어서 더 살만한 세상을 이루는 총지종도가 되어볼 일입니다. 옴마니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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