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경전에 원정 대성사 교판사상 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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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0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12-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12-09 14:16 조회 75회본문
소의 경전에 원정 대성사 교판사상 내재
1. 소의경전과 교판사상
1) 불교사와 밀교경전
현재 한국불교 총지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30)은 『대일경』과 『금강정경』, 『대승장엄보왕경』, 그리고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이다. 『현밀원통성불심요집』을 준제진언 의궤의 전거로서 소의전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소의경전은 총지종의 창종 정신과 밀교종단으로서 차별성을 표현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원정의 불교사에 대한 인식과 교판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소의경전 가운데 중요한 것은 『대승장엄보왕경』으로 경전은 육자진언과 준제진언의 전거로서 경전을 주요시했을 뿐 아니라 양 진언에 대해 인도·티벳과 동아시아, 한국을 연계하는 공간과 시간적으로 인간세상을 초월하는 범우주적인 가치의 실현을 지양하는 전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원정의 다음 법설과도 맞물려 있다.
불교를 대별하여 소승, 대승, 밀교의 셋을 들 수 있고, 석가모니불의 교설에서부터 시대에 따라 점차 발달하여 왔다고 하는 설도 있으나, 실은 불타 자신의 교설 중에는 이 모든 것이 최초부터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제자들이 그 가운데서 부분별로 중점을 두어서 전해 왔음으로 어떠한 계통은 소승, 어떠한 계통은 대승, 어떠한 계통은 밀교라는 등 상이한 경향이 평행하여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소승경전이라고 하는 아함경이나 파리어 성전 중에도 대승, 내지 밀교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일례가 될 것이다. 『종조법설집』, p.22
위의 인용에서 불교를 소승·대승·밀교로 나눈 방식은 대승불교를 바라밀문과 진언문으로 구분하는 인도·티베트불교의 전통과 다르다. 밀교는 최초 진언문으로 불리다가 진언도(眞言道), 진언승(眞言乘)으로 불리고 동아시아에서는 밀교, 혹은 밀승(密乘)·밀종(密宗) 등의 용어로 불리웠다. 원정의 불교 구분은 밀교가 생소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붓다의 근본교설로부터 불교사 전체를 결집하는 잠재력을 평가하는 대목이다. 원정의 가르침은 석존의 근본교설에 대해 정각자 설법의 전체성을 지적한 것이며 후기밀교 시대에 이루어진 라훌라의 가탁은 법맥의 권의를 증명하기 위한 의례적 전통이다.
인도불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석존의 가탁에 의지한 대승경전의 존재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밀교경전의 경우 교주를 역사적 인물인 석존으로부터 벗어나 법신불을 비롯한 다양한 본존이 등장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대승경전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대승경전은 확실히 불전문학의 산물이며 가탁과 허구를 가지고 있다. 대승경전은 현교의 경우 석존의 설법에 가탁해 대승의 진리를 드러낸다. 인도·티베트의 불교교단에서 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은 대승경전에 대해 그것이 불교의 진리에 부합하는지 여부이다. 때문에 대승불교 시대 이루어진 경전의 존재는 종교적 평가이자 학문적 평가이며, 문헌과 증거를 우선시 하는 사회적 평가와는 다르다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인도·티베트 불교교단은 대승경전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으며 위경(僞經)과 가탁(假託)을 철저히 구분하고 있다.
원정의 밀교사관을 볼 수 있는 일부는 다음과 같은 인용에서 볼 수 있다.
불멸 후 팔백년대에 남천축 철탑 속에서 십만송의 밀교경궤가 출현하여 대일여래, 금강수보살, 금강지, 선무외 등에 의하여 혜과에게 전하고, 혜과로부터 신라에서는 혜일과 불가사의가 수법하였고, 일본에서는 공해가 수법하였으나, 공해보다 혜일이 먼저 수법하였으며 법형이 되는 것이다. 한편 신라시대의 혜통국사(총지종의 개조)는 입당하여 선무외삼장으로부터 수법하였으므로 공해보다는 훨씬 먼저가 되는 것이다. 『종조법설집』, p17
원정의 밀교도량이나 전법에 대한 인식은 정통밀교의 의칙을 정확히 따르고 있다. 대일신앙을 제외하면 관음·약사·지장신앙은 한국불교 신행의 중심을 이루는 본존들이다. 민간에서는 주로 염불이나 공양수를 떠놓은 치성을 떠올리게 되지만 고려시대만 해도 의궤에 입각한 도량의 개설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원정은, “정통적 밀교는 반드시 조직과 체계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유사밀교다.”라고 하여 향후 종사로서 밀교중흥의 역사를 일으킬 역사관을 보이고 있다. 원정은 종사로서 종단의 밀교 인식이 향후 종단의 행보와 미래 향방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법어들을 도처에 볼 수 있다. 원정의 밀교 인식은 밀교의 판도를 동아시아에 국한하지 않고 인도불교에서 시작된 석존의 권위와 삼장, 그리고 이를 지지한 나란다사의 정통을 고려한 불교사의 전체적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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