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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세계 우렁찬 소리 울리고 시방세계 뻗어갈 우리 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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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0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12-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연재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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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12-09 12:28 조회 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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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종조 원정 대성사 일대기 (34회)

“대천세계 우렁찬 소리 울리고 시방세계 뻗어갈 우리 총지종”

1973년 5월 1일 서울선교부에서 성북선교부로 설단이설불사를 봉행하고 최초로 불교총지종의 현판을 내걸었다.


대성사는 1974년 9월 예불가 ‘오대서원’과‘회향서원’을 직접 작사하여 공식 불공과 의식에 도입하고 합창단을 만들었다.


창종은 선포하였으나 종단의 형태가 완전히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현교의 전통사찰들은 전통사찰관리법에 의해 특별히 관리되었음에도 관리의 미비함 때문에 비구·대처의 분쟁 속에 유실되는 일이 잦았다. 뿐만 아니라 개종 초기 희사한 재산을 두고 겪었던 우여곡절도 있었다. 대성사는 종단 재산은 반드시 공적으로 운영돼야 하며 누가 보아도 투명해야 한다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한 개인에 의한 사유화나 유용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치밀하게 규정을 만들었다. 오랜 공직의 경험에 비추어 세월이 흘러도 공정하도록 기틀을 만든 것이다. 


당시 정부에 종단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하나는 전통사찰관리법에 의한 종단 등록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재단의 설립과 등록이다. 대성사는 1973년 10월 17일 재단법인 불교총지원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종단 등록의 요건을 갖추었다. 종단이 정식으로 등록돼야 공적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기 때문에 대성사와 교도들이 노력을 기울인 일이었다. 

1973년 12월 12일 서울시에 종단 등록과 재단 허가 신청을 함께 냈으나 종단 등록은 반려됐다. 이듬해 5월 30일 주무관청인 문화공보부로부터 재단법인 불교총지원 설립허가를 받게 된다. 이로써 대성사는 현대 밀교 부흥을 위한 숙원 하나를 해결한 셈이다.


6월 12일 대성사는 주석하던 성북선교부에 ‘불교총지종’ 현판을 걸었다.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이 땅에 정통 밀교가 다시 꽃을 피우는 공식적인 순간이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전국의 교도들은 곳곳에서 서원당을 열고 밀교의 가르침을 전했다. 현재 총지종의 주요 서원당은 대부분 그 무렵에 설립된 곳들이다. 그만큼 대성사에 대한 믿음과 밀교 수행에 대한 목마름이 컸던 것이다. 대성사는 포교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식견을 드러냈다. 음악을 통한 포교에도 시대를 앞선 행보를 보였다. 


당시 만든 창교가 가사를 보면 대성사가 교단을 세운 뜻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중생을 건지겠다는 원력이 시방세계 빛으로 뻗어가고, 사명으로 뭉친 교도들은 금강같이 굳은 신심으로 즉신성불의 길을 영원히 전하는 내용에서 당시 대성사와 교도들의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다. 


삼계의 중생들을 모두 건지고 찬란한 거룩한 빛 널리 비추며

대천세계 우렁찬 소리 울리고 시방세계 뻗어갈 우리 총지종

법계의 사명으로 여기 모여서 금강같이 뭉쳐서 일어난 교단

즉신성불 대도를 널리 열어서 영겁으로 이어갈 우리 총지종


대성사는 불교의식에 찬불가를 적극 활용했다. 예불가 ‘오대서원’과 ‘회향서원’을 직접 작사하여 공식 불공과 의식에 도입했다. 그밖에도 ‘네 가지 큰 은혜’, ‘성도절 노래’, ‘창교절 노래’ 등 16곡의 찬불가를 직접 작사하였고 이 가운데 6곡을 완성했다. 워낙 문체가 유려하고 게송을 읽기 쉽게 설해온 대성사는 노랫말을 만드는 데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가사뿐 아니라 기본적인 곡조를 작곡하고 전문 작곡가에게 편곡을 의뢰하여 총지종의 교의를 담은 아름다운 찬불가를 보급했다. 찬불가를 불공의식에 공식 도입함으로써 현대적인 불교의식을 정착시킨 것이다.

대성사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도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1975년부터 각 사원에 어린이 불자들을 위한 자성학교를 개설했다. 승천사, 수인사, 정각사, 국광사, 성화사에 어린이 법회가 열렸다. 자성일 법회에 참여한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것에서 출발하여 점차 놀이방과 공부방의 기능을 확대하고 전담 교사와 봉사자를 배치하여 놀이와 학습을 통한 인성교육 및 불교교육의 장을 펼쳤다. 전국 사원에 어린이 법회와 중고등학생회 법회가 개설되면서 종단은 활력이 넘쳤다. 종단의 미래 인재가 곳곳에서 움을 트고 있었다. 


대성사가 공을 들인 또다른 불사가 있었으니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진호국가불사이다. 종단의 기틀이 탄탄해진 1970년대 중반은 냉전시대의 위기감이 정점에 달한 시기였다. 남과 북의 긴장뿐 아니라 동서진영의 경쟁과 대립은 당장이라도 전쟁이 나고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정도로 긴박했다. 신라의 명랑 법사가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문두루 비법을 행한 것처럼 밀교행자들은 언제나 국토와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왔다. 1975년 대성사는 수호국계주다라니경을 근거로 삼고 진호국가불사 의궤를 정립했다. 특히 베트남 패망으로 위기감이 높아졌을 때 5월 5일부터 일주일 동안 직접 정진하여 본을 보였다. 국가의 발전이 불국정토를 이루는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밀교 수행과 국가의 안녕, 국민의 안락이 일치함을 법문으로 남겼다. 


“법신불은 본래 있어 

보리심菩提心에 비유하고 

화신化身불은 닦아 나니 

보리행에 비유한다. 

법신불이 중생 위해 

당신이 곧 화신 되니 

법신부처 이 밖에는 

다시 부처 없는지라 

법신불은 태양같고 

화신불은 만월같다. 

그러므로 법신명호 

비로자나 대일大日이라. 

밀교 본신 양인 고로 

현세정화現世淨化 위주하며 

밀교 본신 양을 쓰고 

일요자성 날을 한다. 

현세안락 서원하여 

이 땅 정토(淨土) 만드므로 

진호국가鎭護國家 서원으로 

자기성불 하기 위해 

식재증익息災增益 경애항복敬愛降服 

사종법四種法을 수행하니 

국민 모두 안락하고 

국토 모두 성불된다. 

이것이 곧 오는 세상 

몇 천 겁을 기다려서 

성불함이 아니므로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 한다.”


진호국가불사를 거행하고 모든 불사를 양력으로 진행한 뜻을 밝힌 것이다. 국가공휴일로 제정된 부처님오신날을 제외하고 모든 불사를 양력 기준으로 시행했다. 대일여래 비로자나 부처님이 태양을 상징한다는 교의적인 측면도 있지만 현대인의 변화된 생활양식에 맞춰 현대적인 종단 운영에 그 취지를 더했다. 음력 위주였던 불교계의 오랜 관행을 거침없이 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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