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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자부(知足者富)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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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9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10-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복지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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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탁상달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시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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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10-15 12:00 조회 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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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자부(知足者富)하는 마음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노자(BC 6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도가(道家)의 창시자.)’는 “족한 줄 알면 욕되는 것이 없고, 머무를 줄 알면 위태로운 일이 없다(知足不辱, 知止不殆)”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가이장구(可以長久) 즉 오래 보전할 수 있다고 노자는 덧붙이고 있다. 오래 보전한다는 것은 바로 생명과 행복을 의미한다.


여기서 족(足)함을 알면 욕(辱)되는 일이 없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 나의 형편과 처지에 만족할 줄 모르고 자기의 분에 넘치는 탐욕(貪慾)과 사치(奢侈)와 낭비(浪費)의 생활을 하면 종말에 가서는 반드시 곤욕과 불행을 겪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머무를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 진퇴(進退)를 바로 아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나아갈 때가 있고 물러설 때가 있기 마련이다. 나아갈 때에는 물러서지 않아야 하고, 물러설 때에는 이 역시 나아가서도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왜 실패의 나락에 떨어지는 우(愚)를 범하게 되기도 하고, 또는 좌절하거나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될까?


이는 물러설 때에 물러서지 않고 머물러야 할 때 머무르지 않고 오직 저돌적(猪突的)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삶의 지혜라는 것은 족함(足)과 머무름(止)을 아는 것이 지혜의 핵심이 된다. 족한 줄을 알고 머무를 때를 아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생활 철학이요, 사리 판단의 근본 바탕이 된다.


우리 선인들은 ‘나는 만족할 줄 안다(吾唯知足)를 생활의 철학으로 삼고 살았다. 우리 모두는 탐욕의 노예와 이기심의 종(奴婢)이 되지 말고, 자기의 분수를 알고, 자기의 분수를 지키며, 자기 분수에 맞게 사는 슬기로운 지족인(知足人)이 되자는 것이다.


옛날에 두 석수(石手)장이가 살고 있었다. 돌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하면서 한 석공(石工)은 즐거운 듯 늘 흥얼거리며 망치에 장단을 맞추어 가면서 일을 하였고, 다른 한 석공(石工)은 일을 하면서도 늘 상을 찌푸리고 짜증을 내면서 투덜거리며 일을 하였다. 이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더 행복했을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전자가 행복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생활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똑같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전자는 단순히 이을 생계의 수단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돌을 깎는 일 그 자체를 자기의 삶의 목적으로 생각했고, 후자인 석공(石工)은 그것을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자 보수를 받기 위한 방편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이 생각의 차이는 목적(目的)이냐 수단(手段)인 방편이냐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지족자부(知足者富)라고 쓴 어느 명필가의 족자 한 폭이 생각 난다. 네 글자로 된 한자 성어로 된 족자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이 사뭇 깊고 깊다. 이 사자성어(四子成語)의 의미는 누구나 자기의 분수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행복하다는 뜻이다. 자신의 환경과 자기의 분수를 알고,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기반으로 성실하게 생활할 때 그 분수가 가져다주는 삶의 차원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드높은 차원을 향해 역량을 쌓고 발판을 굳혀가면서 끊임없이 정진(精進)하는 지족인(知足人)이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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