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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부모의 생각·관념으로 옭아매선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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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9-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왕생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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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9-12 14:24 조회 2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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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부모의 생각·관념으로 옭아매선 안돼 ”

자식을 위한 기도


2025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해마다 입시철이면 교회나 성당이나 절을 물을 것 없이 자식의 합격을 위해 기도요, 축원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기도란 무엇을 도와달라고 애걸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받아들일 수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기도에는 속엣말이나 목소리가 아니라 진실과 간절함이 필요하다. 진실과 간절함이 없이는 우리 뜻에 울림이 없다. 그러니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나 물건을 가지고 어디로 찾아 나설게 아니라, 맑은 눈과 투명한 가슴으로 자기 몫의 삶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심성 자체가 원래 신령스런 영성이요, 밝은 불성이므로 그 심성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때 내 소원을 담은 기도는 내 자신의 것이 되어 내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언젠가 한 어머니로부터 얻어들은 말이 생각난다. 평소 공부를 잘한 아들이라 대학진학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안 했는데, 뜻밖의 낙방을 하게 되자 그 어머니는 정말로 미칠 것 같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식의 진학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못 할 일이 없겠더라는 것. 그때 심경으로는 가령 도둑질이라도 해서 아들이 합격만 해 준다면 주저 없이 도둑질이라도 하겠더라는 것이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이런 원색적인 집념으로 인해 혈통이 이어지고 종족이 보존되며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을 법하다. 그러나 자식의 건전한 인간형성을 위해서는 원색적인 감정보다도 이성적인 이해가 따라야 할 것이다. 또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도리어 어린 자식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겨준다는 사실도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학교의 선택이며 전공까지도 부모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우길 때 아는 독립된 인간으로서 자주적인 선택과 판단의 능력을 상실, 매사에 부모의 눈치만을 보면서 의존하려는 나약한 무골충이 되고 만다.


자식을 부모의 예속물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 부모의 굳어진 생각이나 낡은 관념을 가지고 한없이 뻗어갈 아이들에게 억지로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 자식은 부모를 거쳐 이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부모의 것은 아니다. 다른 일은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자식 일만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을 줄 것이지 부모의 생각이나 관념으로 옭아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대개의 부모들은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그릇된 가치의식이며 온갖 타락 현상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자기 자식들이 세상에서 입신출세할 수 있도록 좋은 대학에 들 어가기만을 바란다. 또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에 들어가 주기만을 바라지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물론 대학에 붙느냐 떨어지느냐는 눈앞에 닥친 중대한 관심사 이지만, 자기 자식이 인격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어떤 생활태도를 가지고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켜보는 일은 보다 근본 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관심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의 발판을 이루기 때문이다.


지식과 기능만을 중요시하고 있는 현대교육은 인간 존재에 대한 전체적인 과정을 깨닫게 하지 않고, 오로지 더 많은 이론과 사실만을 주입시키고 있다. 바람직한 교육은 우리들 자신을 아는 일에 이어져야 한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더라도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 채 사는 삶은 가치부여를 할 수가 없다.


아무 걱정 없이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한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적인 깊이와 폭을 재수를 거친 학생들한테서 더러 느낄 수가 있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 안으로 눈이 열리고 거듭 형성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인생의 도상에서 볼 때 한두 해 늦게 출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의 삶에 얼마만큼 성실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또 사람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그릇이 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든 안 가든 시절인연이 오면 그 그릇을 언젠가는 채우기 마련이다.


“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기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 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해 주소서. 그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표는 높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데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소서.”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들을 위한 기도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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