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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발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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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0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1-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신년기획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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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1-07 14:53 조회 5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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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발원’합시다

발원과 욕심의 차이

어느 법회 자리에선가 한 젊은이가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불교에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욕심이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습니까?” 이것은 당연한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봄직한 의문입니다.

 

약육강식의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대방을 짓누르기보다는 무조건 양보하고 욕심을 내지 않으려 하다가는 얼마 안 가 도태되고 말 것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심지어 일부 불자들이 무기력해보이며, 세상에 대하여 염세적이고 피동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까닭도 이러한 불교관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불교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발원을 수행의 첫걸음으로 삼고 있음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원을 발한다는 것,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욕심과는 다릅니다. 욕심과 발원의 차이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욕심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바람이지만, 발원은 공통적인 바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나만을 위한 원이 아니라. 우리 모두 인류 전체,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와 남은 구분되지 않습니다.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며, 남이 잘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욕심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발원은 능동적인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고 부와 명예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타고난 것입니다. 하지만 발원은 애당초 없는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꿈에도 남에게 주고자하는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러 원을 발하여서 자꾸 베푸는 마음을 연습함으로써 아상의 소멸에 기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욕심은 결과를 중시하지만 발원은 과정을 중시합니다. 한마디로 발원은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입니다. 욕심은 미래에 중점이 두어져 있기 때문에 그러한 소원달성을 위해서 때로는 현재를 희생할 것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발원은 현재에 중점이 두어져 있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세운 원을 달성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기는 하지만,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노력하는 자체가 즐거운 것입니다.

 

발원을 잘 한다는 것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보건대, 발원은 참다운 자기전환의 시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업과 생이 아니라 원생으로 나아가는 첫 단추인 것입니다. 업생이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과거의 지은 바 업에 이끌려 살다가는 것입니다. 원생이란 스스로의 삶을 갈무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방향을 설정해서 과거의 업을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생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발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마음에 그리는 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걸림이 없다면 그렇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 걸림이 있기 때문에 즉 못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의욕이나 선입관을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원을 세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발원을 세우는데도 요령이 있습니다. ··치 모두가 근본 번뇌를 대표하는 것으로써 인간 누구에게나 공통 된 속성입니다. 욕계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욕심은 당연한 것이며, 이에 수반하여 성냄과 어리석음 등이 쉽사리 따라붙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이러한 삼독 가운데 특히 돋보이는 부분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유난히 욕심이 많은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사소한 일에 도 화를 잘 내며, 어떤 이는 지극히 우둔한 경우 등입니다. 알고 보면 여기서의 욕심이라든가 성냄 혹은 우둔함 등은 사실 그 자체로서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다만 일종의 에너지, 즉 방향성 같은 것 일뿐입니다.

 

발원이란 그 탐··치라는 속성 에너지의 방향전환입니다. 그것은 욕심을 완전히 부정하여 억제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욕심을 인정하고 다만 방향을 바꾸어 도()심으로 인도하자는 것입니다. 욕심이 많은 이는 성욕, 식욕 등의 기본적 욕심을, 붓다를 보고자하는 욕심, 불법을 깨치고자 하는 욕심, 계를 지키고자 하는 욕심으로 전향시켜 신심이 강한 이로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을 잘 내는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회피하고 남의 과실을 보아 넘기지 못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러한 성냄의 대상을 전환하여 일체의 유위법을 회피하고 자신의 과실을 참지 못하도록 한다면, 뛰어난 관찰력에 힘입어 남들보다 훨씬 잘 깨쳐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둔한 이는 오히려 인내심이 강한 장점이 있습니다. 오직 앞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황소처럼 옆을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하나 장애를 없애 나가면서 통찰을 확립해나가는 강점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발원의 연습과 실행

 

불교의 특징은 부처님께 소원을 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원을 다져나가 실행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 첫째 단계로서 의도대로 행동하기를 연습해 보기로 합니다. 이것은 선의도, 후 행동을 말 합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자신의 행동을 의도하는 대로 좇아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손을 들거나 발을 떼는 등의 낱낱 행동에 앞서 마음으로 먼저 읊은 연후에 천천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 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평상시에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행동하고, 의도가 오히려 이를 뒤쫓아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과거의 습관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업생인 것입니다. 최초에 자신의 마음에 따라 자신의 육체와 환경이 설정되었음을 망각 한지 오래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반대로 의도한 후 행동하는 연습을 통해서 태초의 자기 모습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행동에서부터 관찰되고 연습되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에게 맞는 발원 즉 목표의 설정이 되어 있는지 검토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발원을 가질 경우 발원은 성취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단기 목표를 세워서 바라는 바를 쉽게 성취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이 항상 완벽하고자 하는 목표와 마음이 편안하고자 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는 어느 쪽도 달성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완벽주의자이면서 스스로나 상대방을 편안케 해주는 이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일상적인 예로 돈에 대한 경멸을 가진 이가 한편으로는 부유해지고자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정 부유해지고자 한다면 돈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돈이나 사람이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에게 다가서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돈을 더러운 것이며 부자는 대개가 사기꾼이나 도둑놈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부유하기를 바란다면 성취될 리가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도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단적인 예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집단의식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 받고, 지배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집단의식 가운데 하나로써, 돈을 좋아하는 이를 천박한 이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돈을 싫어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당당하게 발원하십시오. “나는 돈을 사랑한다.” “나는 명예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고 그렇게 할 때 돈이나 명예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애착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애착과 사랑은 다른 것입니다. 다만 돈을 많이 가지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돈을 좋아하는 것은 애착입니다. 그러나 돈을 귀중히 여기고 돈으로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진정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명예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밝힌 욕심과 발원의 차이를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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