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신라 불가사의 아사리의 『대비로자나경공양차제법소』

페이지 정보

호수 284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6-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법장담론

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7-11 13:27 조회 597회

본문

신라 불가사의 아사리의 『대비로자나경공양차제법소』

종교와 지식이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후손에게 전하는 생명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불교의 생명력은 법에 대한 탐구와 변화이며 밀교가 탄생한 이유와 과정도 그리 설명된다. 

당조의밀교가 절멸한 이후 동아시아불교의 중심지는 고려로 옮겨갔으며 고려불교는 신라불교에서 비롯된다. 

조선 초 많은 밀교문헌들이 산실된 가운데 신라승 불가사의 아사리 저술의 『대비로자나경공양차제법소』(이하 『공양차제법소』는 동아시아를 뒤흔든 명저였다. 

선무외삼장은『대일경소』를 통해 동아시아에 득세한 중국 종파불교의 이론들을 진언문으로 회통하고 진언문의 역사적 정당성을 변호하였다. 

『공양차제법소』는 진언문의 실천원리를 요약한 간결한 실용서이다. 

『공양차제법소』와 최근 일련의 논문들을 다시 살펴보니 옥나영 교수의 말대로 『공양차제법소』의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라는 주장이 새로이 실감이 났다. 

개인적으로 『공양차제법소』의 저술동기에 대해 영묘사 출신 불가사의 아사리의 출배경을 들어 신라 화엄계가 비로자나여래의 실천원리를 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재고한 결과 『공양차제법소』의 구조가 전체적으로 유가행에 기초한 것을 고려할 때 화엄계뿐만 아니라 원효의 말년 저작인 『금강삼매경론』과의 관련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에서 『유가론』을 빈번히 인용하지만 오히려 전작인 『대승기신론소.별기』의 이론을 완생하려는 의도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송고승전』에는 신라의 왕후가 머리에 종기가 났을 때 신하를 당에 보냈는데 중간에 서해 용왕이 나타나 왕후가 청제의 셋째 딸임을 밝히고 『금강삼매경』을 유포할 것과 원효로 하여금 주석을 저술하도록 부촉하였다. 

신하는 장딴지를 베어 경전을 넣어 봉하고 원효에게 전하니 원효는 “이경전은 『기신론』의 시각과 본각의 이각(二覺)을 종지로 삼은 경전이다. 소의 두 뿔 사이에 책상을 안치하고 지필묵을 나에게 준비해주시오.” 라고 했다. 

원효는 소의 등에 올라탄 채 5권의 주석을 단박에 마쳤다. 원효는 왕의 명령으로 황룡사에서 강설토록 하였으나 원효를 시기한 자가 주석을 훔쳐 달아나자 원효는 다시 단박에 암기한 대로 사흘 만에 책을 복원하였다. 

김호귀는 『금강삼매경론』의 해설에서, “첫째의 단락은 관(觀)이고, 둘째 단락은 행(行)이며, 셋째 단락은 관과 행이 함께 실천되는 모습이다”라고 하였는데, 『금강삼매경론』에서 전개한 실천원리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말이다. 

원효는 「여래장품」에 대해, “첫째는 제법이 하나의 실재적 진리에 들어 있음을 설명하고, 둘째는 제행이 하나의 불도수행의 길에 들어 있음을 설명한다.”라고 하였고, 또한, “(이 경전이) 미혹한 자를 위한 것이라고 한 것은 일미에 통달하지 못한 자를 위해 설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아자의 진리와 방편을 전개하는 이론과 일치한다. 아사리불가사의도 『공양차제법소』에서, “깊고 심오한 무상법(無相法)은 열등한 지혜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마땅히 저들과 더불어 후세를 위하여 유상(有相)을 함께 설한다.”라고 하였다.

아사리 불가사의는 자신의 활동기에 원효 성사의 저술들을 열람했을 것이다. 훗날 도당하여 나란다대학 출신의 선무외와 만나 담론하였을 때 원효 성사가 전개한 이제설과 여래장의 이론들이 진언문의 수행으로 정비된 것을 보고 원효 성사의 선구안과 지혜에 감복했을 것이다. 

진언문이 신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유가도 그 틀을 잃은 채 선불교에 휩쓸려 종맥마저 단절되었을지 모른다. 진언문이 들어와 인도불교 유가행의 면모를 반면교사로 삼아 선불교도 함께 발전하고 나란다대학 출신의 지공 같은 스님이 증명했으리라 생각한다.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이론들은 7, 8세기 인도불교 대승학파들이 발전시킨 주장과 많은 점에서 일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불교사의 입장에서 아사리 불가사의의 한편의 밀교저작인 『공양차제법소』에서 신라가 꽃피운 불교의 열매가 맺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니, 진언문에 심신을 담은 후손들이 어찌 가슴이 벅차지 않겠는가? 


전 동국대학교 티벳대장경역경원 

정성준 연구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