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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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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2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5-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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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리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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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5-02 15:36 조회 60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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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세계관

과학의 발달도 자연과 사회현상을 예측 못해

불교로서 이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모든 현상을 예측 가능한 형태로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자연과 사회의 모든 현상에 대해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고대의 경우에는 예측이 더 어려웠고,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할 경우 초월적 존재를 가정하고 그 존재로부터 비롯한 현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종교는 세계에 대해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도록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였고 초기 인류 사회에서는 나름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지식이 고도화하면서 초월적 존재의 행위로 설명하던 것들이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과학의 발달에 맞춰 종교의 교리도 함께 변화를 꾀하지 않고 이전의 교리의 내용 그대로 멈추게 되면 종교와 과학간의 갈등이 발생합니다.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원인을 탐구하면 더 이상 원인을 따질 수 없는 ‘제1원인’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결과의 궁극적 원인이며, ‘그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원인 없는 결과’라는 모순에 다다르는데 이를 신(神)으로 보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은 제1원인을 신이 아닌 이성으로 대체하였는데 이를 근대의 시작으로 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신’ 내지 신의 대체품인 ‘이성’을 제1원인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동어반복에 해당합니다. 이런 세계관에서는 세계를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는데, 실제로는 이러한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주관과 객관으로 나눌 수 없는 서로 얽혀있는 상호의존적 관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서있는 세계관과 가장 비슷한 것이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입니다. 


 연기(緣起)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라는 관점으로 세계를 파악합니다. 역으로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라고 할 수 있으며 불교의 핵심 교리는 후자에 담겨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신을 전제로 한 세계관은 자신의 주장이 가진 교조주의적 속성으로 인해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한편으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때 종교의 교리와 과학의 논리가 충돌하게 되는데 보통 후자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유럽이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도에서의 불교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교리를 수립해왔습니다. 특히 중국으로 전파된 불교는 위진남북조의 대동란시기를 거치면서 화엄종, 천태종과 같은 종파불교와 선(禪)이라는 새로운 불교를 탄생시켰습니다. 


 사실 중국에서의 불교는 너무나 창의적으로 변화를 수행하였는데, 위진남북조 시기는 북방의 유목민과 중원지방의 농경민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불교가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뒤이은 당나라는 중국의 최전성기에 해당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한 당 왕조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문화는 불교의 교리에 기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세의 송(宋) 왕조는 유불(儒佛)이 융합되는 시대로 남송대에 성립한 성리학은 이후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국가 이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명청대의 사회는 비교적 안정된 사회로서 당시 중국의 세계 경제에서의 비중이 대략 25%내외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구 사회 발전의 속도가 동아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랐기에 19세기 중엽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지역도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아서 식민지 내지 반(半)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비록 중국과 한국이 침체기를 맞이하지만 일본이 근대국가로 이행이 성공하면서 일본불교도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근대 이후의 불교는 일본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오히려 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기독교의 융성이 초래한 병리적 현상, 즉 JMS와 같은 종파의 득세를 해독시킬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불교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럼리스트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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