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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원 우리 스승님 (영천 단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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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7-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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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9 08:19 조회 1,8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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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원 우리 스승님 (영천 단음사)
자비, 화합으로 피어나는 연꽃같은 단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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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단음사를 찾는 날

전국은 4개월째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저수지 바닥은 거북등 처럼 갈라진지 오래다. 전국민이 가뭄극복을 위한 지혜와 성금을 모으고 소방차, 화물기차를 동원하여 물이 없어 미쳐 모내기를 하지 못한 곳에 물을 공급하는 진풍경이 한창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물로 인한 진풍경을 알리기도 한다.

영천 비로자나 궁전을 찾는날 부처님은 감로수를 내려주셨다. 마치 영천 초행길에 선물을 주시듯 가뭄으로 인한 농심과 민심을 달래주기라도 하듯이 환희심의 감로수를 내려 주셨다.

이런 감로수가 싫자 않은 듯 많은 사람들은 비에 흠뻑 젓어 기뻐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영천 소방서 뒤 영천 단음사 를 이렇게 찾아보았다. 벌써부터 여러 보살님과 각자님들이 기 다린다. 칠이 퇴색된 불교총지종 단음사라는 목간판이 세월의연을 말해주듯이 감로수에 흠뻑 취해있다. 비록 도심속에 세련 된 사원은 아니지만 여느 사원이나 마찬가지로 푸근한 어머니의 품과 같이 안아주셨다. 넓은 정원은 금강법계궁의 모습이었고 수많은 분재와 수석은 교도가 되어 “성도합시다” 히며 합장을 하였다.

영천은 보현산의 높은 기상과 금호강의 맑은 정기가 조화를 이뤄 예로부터 삼산이수의 풍광 좋고 인심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충절의 고장으로 포은 정몽주선생과 박인로, 최무선 장군 등 많은 션현들을 배출하였고, 임진왜란과 6,25 사변의 애국애족의 자랑스런 호국충절의 고장이 영천이다.

골벌국 이라는 부족 국가의 형태를 유지히다가 서기236년 신라에 병합되어 군현체제에 들어가 지금의 영천지역이 되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이들은 각각 임고군과 신녕현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영주군으로 불리다가 1413년 (태종 13년) 영주군을 영천군으로 개명되었다.

1981년 영천읍이 영천시로 분리, 독립되었다가 13년 6개월만 에 다시 시와 군이 하나로 통합된 영천시는 시. 군 통합이후 경 상북도 내에서는 여섯번째로 넓은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사찰이 있는곳은 산세가 수려하고 풍수적으로 최고이다는 말이 있다.영천 또한 단음사를 비롯한 주위에는 조계종 제 10교구인 은해사및 70여개의 사찰이 있어 이곳의 산세를 증명해주고 있다.

영천 단음사는 총기 14년 인덕서원당을 개설하여 총기 19년 단음사로 개칭하고 총기 22년과 25년에 주위의 부지를 매입하여 확장했다.

영천에 이시강보살님을 비롯한 다섯분이 대구 개천사 교도로 다 니다가 영천에 총지종 사원이 있었으면 하는 서원을 세우고 불공  하여 당시 개천사 주교였던 수성정사와 삼정행 전수님이 종령 님에게 재가를 받아 오늘날의 단음사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천 단음사 교도들은 대구 개천사를 큰집이라 부르곤 힌다. 또한 일신행 전수님은 두분 스승님의 공덕을 잊지 않고 있다.

현 일신행 단음사 주교는 사회에서 적십자 봉사단과 새마음 봉시단 및 여성구국 봉사단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활발히 벌여 공로패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불교총지종과 인연이 되어 현 포항 수인사에서 근무히다가 인덕서원당이 개설되면서 초대 주교로 발령을받았다‘.

현 단음사 이설불사는 일신행 주교님의 끊임없는 7일, 49일, 100일 불공과 서원으로 여러 어려움을 이겨냈으며 이곳에 절을 세워도 된다는 이웃들의 진정서와 동의는 일신행 주교님이 이웃 교도들과의 관계를 짐작케 핸다.



교도들의 119 단음사

따르릉 따르릉 급박한 전화벨소리에 잠을 깬다. 어제도 사원 의어수선 한곳을 치우느라 밤 늦도록 일히다 잠이 들었는데… 피곤한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본다. 새벽 이다. 교도의 전회다. 여기 어디인데요 지금 우리 어린아이가 아파서 죽어가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하는 급박한 전화. 바로 옷을 입고 이반혁 각자 님을 깨워 차에 시동을 건다. 밖에는 몇 십년만에 함박눈으로 시내에 차는 한 대도 없다. 쌓인 눈에 차가 마음대로 진행하지 못힌다. 엉금엉금 기어가듯 교도집에 도착하여 어린아이에게 따 뜻한 물과 옴마니반메훔의 불공과 병원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긴다. 일신행 전수님은 교도들이 부르면 스승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교도와 함께 해야 한다는 철칙과 원칙이 있다.

이런 급박한 일은 초창기에 비일비재하여 마음놓고 편히 지내 본 적이 없다 하신다. 각자님은 자성일에 손수운전을 하여 교 도들을 모시고 왔다가 바래다 주곤하여 몇 년밖에 되지 않은 새 차가 십년이 넘은 차로 변해버렸다. 영천 단음사는 교도들의 119이다. 어려움이나 환자 일손이 필요히면 일신행 전수님과 이 반혁 각자님운 모든일을 제쳐두고 달려간다. 어려운 환자들이 찾아오면 불공으로 해탈을 시켰으며 교도들 중에는 이러한 영험 을 경험한 사람들이 특히 많은 곳이 닥음사이다.



수석과 분재를 사랑하는 각자님

단음사 앞뜰에는 정원에는 코끼리, 거북이, 두꺼비등 수많은 동물들과 소나무 벋나무 등 몇십년 묵은 고목들이 방문하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잘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분재와 수석들이 단정히 놓여 있다. 이반혁 각자님은 몇해전부터 이지역 수석분재 연합회 회 장직을 맡고 있다. 이런 분재와 수석을 구경오는 사람이 많다. 그런 분들에게는 어김없이 각자님의 불교강의가 이어진다. 육자 진언 옴마니반메훔 진언의 묘의와 불교총지종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듣지 않고서는 수석과 분재를 구경할 수 없다. 각지님은 “ 수석과 분재의 사랑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름다움과 멋  찾는, 이것도 마음을 순화하고 정화하는 수행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가꾼다”며 자랑을 한다.

일신행 스승님은 우주법계에 부처님은 항상 하시며 모든 유형 무형에 부처님의 법이 있으니 수석 분재를 바라보고 있으면 보 는 이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면 그 마음따라 형상을 달리하니 항시 법에 의지해 수행 실천하는 것이 진언행자의 자세임을 강조하신다. 



진 속이 둘이 아니듯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계시다 

“수박은 모두 시퍼렇게 되어 있지. 그러나 수박의 속을 보면 검은 씨가 박혀 있고 붉은 색깔을 하고 있거든. 우리는 그 수박 을 짜개봐야 수박안이 붉은 색임을 알수 있거든 그러나 밀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진언 수행자는 짜개보지 않고서도 수박안이 붉다는 것을 알고 있어.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지...” 일신행 스 승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젊은 사람이 종단에 많이 입문해서 하루하루 바뀌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젊은 생각이 많이 있어야 교세 발전 과 교화에 세대차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돈으로 발전히면 소외된 이웃들이 많이 생기거든 예를 들어 미국이 나 일본등 선진국에서도 소외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나라도 이러한 소외된 사람에게 다양한 복지사업을 해야합니다. 국가가 다 할수 없거든요. 그래서 종교기관이 필요 한겁니다. 유치원, 놀이터, 청소년복지, 노인복지와 주민과 함께하는 종합 복지시설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해야합니다”고 일신행 전수님은 종단발전에 복지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또한 “스승의 품 위와 위엄은 혼자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도들과 이웃들 이 만들어 준다”고 일침을 하신다

“스승이 교도이고 교도가 스승이고 스승과 교도는 하나이듯 우주법계는 진과 속이 둘이 아니고 항시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 리 곁에 있다”는 말씀이 이어지신다

오순 도순 사랑이 넘치는 사원주교님과 각자님의 얼굴에는 건강하고 편안한 주름이 있다. 단음사 교도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생활을 한다. 농촌의 농번 기는 일손이 모자라 어린아이들의 손도 필요한 시기이다. 교도 들이 일손이 필요히면 달려가 일손을 돕는다. 직접 모내기도 하 고 직접 약도 치고 직접 풀도 메고 직접 추수도 거둔다. 또한 교도의 집에 애경사가 있으면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 께 즐거움을 나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주교님은 단음사의 교 도들 가정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밥그릇이 몇 개인지 알 수  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교도와 스승님은 하나가 되어 정말 정 과 사랑이 듬뿍한 사원, 사람의 향기가 가득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일신행전수님과 이반혁 각자님은 15년 전부터 단음사 신도회를 조직하여 신정회의 외호단체와 단음사를 자기 집과 사원 처럼 가꾸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1대 신도회 회장 정태준, 2대 회장 서원수, 3대 현 회장 이영대 부회장 정정부 총무 전태 규 각자님과 신정회 회장 황월분, 총무 김옥선 보살님은 단음사 교세발전과 총지종단 발전을 위한 궂은 일을 몸으로 실천하고 도와주는 특공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신행 전수님은 생활불교 실천불교는 생활과 수행 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마치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 제하는 관음보살이 나타난 듯…

돌아오는 길에 한아름의 미소와 상쾌한 마음 환희심은 일신행 전수님의 법을 들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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