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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티벳불교의 위대한 스승 파봉카 린뽀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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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4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9-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인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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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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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9-06 15:52 조회 7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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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티벳불교의 위대한 스승 파봉카 린뽀체 (2)

 올해 여름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일주일간 머물렀던 세초링사원은 달라이라마 성하의 쨔끄라상와라딴뜨라 관정식과 맞물려 인도 전역과 국외에서 몰려든 많은 스님들에게 거처를 제공하였다. 주지스님은 외국에서 강의한 경력이 있는 교수스님 몇 분을 소개해 주었는데 미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 많은 나라의 불자들이 티벳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교수스님들은 강의를 시작한 후 대부분 2, 3년을 넘기지 못했는데 이유는 자신의 공부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공부자체에 목적을 두면 읽어야 할 삼장과 주석들이 산처럼 쌓여있고, 의궤대로 수습해야 할 많은 밀교성취법들이 있기 때문에 수행의 성취와 법문이 온전한 스승들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근대불교 파봉카 린뽀체의 수행편력을 통해서도 새로이 드러난 별 같은 스승들의 명호와 자취를 볼 수 있다. 지난 글에 이름이 보인 닥띠 돌제창이 그런 분이다. 돌제창이란 말은 지금강이란 뜻이다. 닥띠 돌제창은 티벳사회에서 생불로 여겨져 존경받는다. 파봉카 린뽀체는 「밀라레빠 십만송」을 비롯해 쫑카빠와 두 제자들의 주석들을 연구하고, 금강수관정도 받았으며 이 많은 밀교의 비밀한 전승을 수여 받았다. 이외 파봉카 린뽀체가 수학한 많은 스승들의 이름을 전하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24때 닥띠 돌제창께서 입적하자 많은 제자들이 가르침과 관정을 청하려 몰려들었다. 그러나 파봉카 린뽀체는 여전히 규또사원 전주지인 틴레 곌첸, 데뿡고망의 깡귤와로부터 도차제와 밀교관정을 공부하였다. 파봉카 린뽀체는 겔룩빠 외에도 샤꺄빠의 전승에도 관심을 가졌고, 닝마의 전승도 익혔다. 파봉카 린뽀체의 전기는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공부는 도차제와 함께 ‘챠끄라상와라딴뜨라’의 전승이었다.
한때 파봉카 린뽀체는 탁뿌 뻬마 와즈라와 함께 녠데계곡의 딱뗀 동굴에서 밀교수행의 안거를 시작하였다. 파봉카 린뽀체는 수많은 밀교 본존들의 수용신을 친견했다. 챠끄라상와라딴뜨라와 관련해 1908년 당송 신뽀리산에서 수행할 때 인도로부터 가져온 챠끄라상와라딴뜨라의 불상에서 본존의 신변이 나투는 것을 보았다. 밀교수행의 영역은 현실보다 수용신의 영역이 더 넓을 지 모른다. 진실섭경의 설처가 색구경천이고 일체의성취보살은 여기서 오상성신관을 익혔다. 그 연원은 오랜 것으로 반주삼매경은 선정의 경계에서 정토불을 친견하는 수행을 설한다. 4세기 무착은 삼매의 경지에서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로부터 유가사지론을 비롯한 미륵 5부서의 강의를 들었다. 이처럼 정토와 유식, 밀교의 세계는 넓지만 불교편력의 포용성 부재는 누구나 선정과 유가, 꿈의 경계를 거부하는 편협한 구석으로 내몰리기 쉽게 만든다.
파봉카 린뽀체가 근본상사인 닥뽀라마 롭상잠뻴 룬둡갸초(1845-1919)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은 30세때로 당시의 교재는 제4대 빤첸라마의 도차제에 대한 주석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사제의 인연으로 인해 닥뽀라마는 파봉카 린뽀체에게 자신의 전승을 남김없이 전하여 명실상부한 계승자가 되게 하였다. 이후 파봉카 린뽀체는 근본상사의 사원인 닥뽀사원을 수없이 방문하였다. 그러나 파봉카 린뽀체에게는 이미 수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어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다. 겔룩빠의 3대사원인 세라, 간덴, 데뿡사원의 무수한 제자들이 몰려들었으며 티벳에서 설법이 이루어진 곳마다 많은 청중들이 청문하였다. 파봉카 린뽀체는 라사에 있을 때 주로 따시최링수도원에 있었으며 근처 춥상수도원도 자주 왕래하였다. 춥상 수도원에서 제5대 빤첸라마의 도차제에 대한 저술과 제5대 달라이라마의 '문수구전'에 대해 명강의를 하였고 훗날 제3대 티장린뽀체에 의해 '손안의 해탈'이라는 도차제의 저서로 출판되었다.
파봉카 린뽀체의 위대한 수행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세간사의 바람은 피하지 못하였는데, 시가체에 근거한 제9대 빤첸라마는 지역의 자치권을 확장하려 시도하였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 티벳중앙정부와 분쟁이 야기되었다. 또한 생전에 종파간의 분쟁이나, 티벳의 수호존을 두고 일어난 사건은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파봉카 린뽀체의 가장 유명한 제자는 지난 글에 소개한 제4대 링린뽀체와 티장린뽀체였다.제13대 달라이라마 성하의 입적으로 인해 두 스승은 제14대 달라이라마 성하의 교수사가 되었는데, 두 스승의 가르침과 인품은 제14대 달라이라마에게 큰 영향을 주어 오늘날 티벳불교가 세계의 불교로 성장하는데 기여하였다. 때문에 파봉카 린뽀체의 수행과 성취는 인도불교가 세계의 불교로 성장하게 한 실질적인 동력이 되었다. 파봉카 린뽀체는 1941년 6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파봉카 린뽀체의 사리는 티벳본토의 세라메 사원의 주법당에 모셨지만 중국의 문화혁명때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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