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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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 ‘시시불공 처처불공(處處佛供 時時佛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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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4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9-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창종 50주년 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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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9-06 15:43 조회 7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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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총지종의 역사 (회)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 ‘시시불공 처처불공(處處佛供 時時佛供)’

승가와 재가가 함께 닦는 ‘승속동수(僧俗同修)’를 핵심으로
삼보정재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담보하기 위해 재단 법인화


 원정 대성사는 정통밀교종단을 구현함에 있어 생활불교를 표방했다. 바르고 참된 생활자체가 곧 불공이므로 때와 장소를 정하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나 부처님을 염하고 진실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 ‘시시불공(時時佛供) 처처불공(處處佛供)’을 종단의 지표로 삼았다.
 역사적으로 초기불교에서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로 변화 발전하였듯이 시대는 이제 새로운 불교를 요구했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시대 변화와 대중의 요구에 발맞춰 새롭게 정립했다. 세간과 출세간, 생활과 불교, 남녀노소, 승속의 구분 없이 기도와 생활이 하나 되어 성불과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미래의 불교상을 생활불교로 구체화했다.
 대승불교가 출가 위주의 불교교단을 지양하고 재가신자들의 신심에 의해 꽃을 피웠듯이 대성사는 최상승의 밀교사상을 중생과 더불어 함께하는 재가종단으로 구현했다.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수행하고 포교하고 실천하는 재가종단이야말로 생활불교의 실질적인 모습이다.
 시대를 이끌어갈 생활불교는 승가와 재가가 함께 닦는 ‘승속동수(僧俗同修)’를 핵심으로 한다. 승속에 차별이 있을 수 없고 깨달음에 있어 승가와 재가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으므로 승직자의 수행법과 교도의 수행법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모든 불공과 계행은 스승과 교도가 똑같이 지키도록 했다. 출가승에 의지하지 않고 누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불공하고 수행하도록 의궤를 정립했다. 총지의 수행법으로 모두 해탈성도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바른 법으로 대중을 이끄는 모범이자 사표인 승직자는 가족과 속세를 떠나지 않는 재가수행자로서 누구나 거리감 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삭발염의(削髮染依)를 하지 않고 편의보발(便依保髮)을 하도록 했다. 승속이 똑같이 일하고 수행해야 하므로 남다를 이유도, 거추장스러울 필요도 없었다. 약식의 금가사를 채택한 것도, 그리고 창종 직후 4종의 법의를 시행하다가 곧바로 단출하고 간편한 흑색 법의로 통일한 것도 생활과 밀착한 교화를 위한 방편이었다.
 생활불교 재가종단을 실현하기 위해 사원은 자연스럽게 도심에 세워졌다. 바쁜 현대인들이 생활하는 틈틈이 언제든 쉽게 들를 수 있는 수행도량이 될 수 있도록 중생들의 삶의 현장 바로 곁에 사원을 건립했다. 보다 많은 이들을 부처님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원 양식도 전통 사찰 양식이 아닌 일반적인 건물 양식을 택했다. 대중들이 내 집처럼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포근하고 아담한 현대식 건물에 사원을 조성하고 수행과 사무행정에 적합한 실리적인 구조를 갖췄다. 종단의 특색은 육합상과 원상, 그리고 사만다라를 상징하는 네 개의 기둥과 코끼리가 웅비하는 형상을 표현한 정문 계단으로 최소화하고 사원이 위치한 주변 조건에 맞춰 건축했다.

총지종의 가장 큰 경쟁력은 대중과 함께 생활하는 재가종단이라는 점이다. 일체중생과 호흡하는 가운데 중생의 아픔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기에 총지종 36개 사원은 모두 도심의 중심에 위치하며 60여 명의 스승들이 일상생활 속 생활불교를 지도하고 있다. <법보신문, 2008년 6월 17일, ‘종단순례④ 총지종’ 중에서>

 원정 대성사는 모두가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불교의 핵심 교리를 생활불교 재가종단으로 실현했다. 시대의 변화와 대중의 요구에 응답한 생활불교의 가치에 수많은 대중들이 호응하여 종단은 일취월장 발전했다. 출가자 중심의 불교에서 재가자 중심의 사부대중 공동체를 구현함으로써 출가 종단의 한계를 보완하고 한국불교의 외연을 크게 확장했다.

창종과 동시에 재단 등록
 여타 종단의 분규와 사유화의 폐단을 지켜본 원정 대성사는 진각종을 이끌 때부터 종단의 재단법인화를 이끌어 투명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를 완성했다. 그 뜻은 고스란히 총지종으로 이어져 창종 직후 곧바로 종단 및 법인 등록으로 구체화되었다. 당시 불교단체의 등록과 재산 관리를 규제한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해 신규 종단의 등록이 여의치 않을 것을 예상하고 종단 등록과 재단법인 등록을 병행 추진했다.
 1973년 10월 17일 대구선교부 회의실에서 재단법인 불교총지원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2월 12일 서울시에 종단등록신청서와 재단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종교단체를 재단법인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 법인등록을 추진한 데에서 재정의 투명성과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정식으로 종단 등록을 이뤄 공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1974년 1월 21일부터 일주일간 철야정진을 할 정도로 종단등록과 재단법인화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재산 상태와 사원 규모 등 행정 편의적인 불교재산관리법의 각종 조항으로 인해 종단 신청은 반려된 채 1974년 5월 30일 문화공보부로부터 재단법인 불교총지원 설립허가증을 수령했다. 당시 종단 등록 이전이라 ‘불교총지종’이라는 종단명을 사용할 수 없어 법인명을 ‘불교총지원’으로 신청했다. 재단법인 등록 다음해인 1975년 1월 새해불공부터 ‘총지종 등록 조속성취’ 서원사항을 추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종단 등록을 추진한 끝에 불교재산관리법이 폐지된 후 1991년 5월 31일 재단법인 불교총지종유지재단으로 법인명을 변경하여 ‘불교총지종’ 등록이 이루어졌다. 삼보정재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담보하기 위한 재단법인 등록으로 총지종은 여타 종교단체에 귀감이 됨은 물론 종단의 건실한 발전에 있어서도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종단 운영 부분에서도 총지종은 한국 불교계의 귀감이 되는 선례를 남겼다. 총지종은 창종 직후인 1974년 유지재단을 설립했고, 1992년 법인 설립을 통해 종단의 기틀을 다졌다. 법인화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종단 운영의 토대가 되어 종권 다툼이나 재산상의 분규를 원천적으로 불식시킨 대표적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법보신문, 2008년 6월 17일, ‘종단순례④ 총지종’ 중에서>

재단등기를 마친 후 원정 대성사와 종단의 주요 간부들은 6월 12일 성북선교부에서 재단 현판식을 거행했다. 정통밀교의 가르침을 전하겠다는 원력 하나로 온갖 풍파를 헤치며 홀로 밀교의궤법을 완성한 원정 대성사는, 상봉동 서울선교부를 필두로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 곳곳에 총지도량을 세우며 온 몸으로 뛰었던 창종의 주인공들과 함께 감격과 기쁨을 넘어 숭고한 마음으로 ‘불교총지종’ 현판을 내걸었다. ‘대한’, ‘한국’이라는 수식조차 과감히 생략한 ‘불교총지종’. 대한민국을 뛰어넘어 세계로 뻗어가고자 하는 원대한 이상을 세상에 공표하는 순간이었다.


1973년 10월 17일 대구선교부에서 재단법인 불교총지원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1974년 재단법인이 설립됐다. 자료사진 _ 법인 설립허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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