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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로 보는 원정 대성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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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4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9-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종조멸도절특집 서브카테고리 연보로보는원정대성사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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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9-06 15:35 조회 8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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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로 보는 원정 대성사의 삶
창종에서 멸도까지 정통밀교 선각자로 한평생

1907년 1월 29일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 죽서竹西마을에서 부친 손기현과 모친 이근호 사이에서 사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다.

1912년 한일합방이 되자 부친은 가족을 모두 이끌고 만주 서간도로 망명의 길을 떠나다.

1919년 부친은 서간도 독립운동의 주체 세력인 서로군정서 산하조직인 한교공회에서 외교원 신분으로 일하다가 1920년 체포되다.

1922년 옥고를 치른 부친은 가족과 함께 다시 고향 밀양으로 돌아가다.

1924년 대성사는 애국지사 홍주일 등이 대구 남산동에 연 중등교육기관 교남학교 고등과에 진학하다.

1927년 6월 17일 대성사 나이 21세에 강숙이(불명: 금강관)와 혼례를 치르다.

1936년 경남 함양군의 학교비 위원회 서기로 취직하여, 함양공립농업실수학교 예산관리 업무를 담당하다.

1940년 일제의 식민 정책에 항거하며 사직 후 가족들과 함께 하얼빈으로 이주하여, 하얼빈 지방법원 소속 대서 업무를 맡으며 송사에 지친 사람들을 돕다.

1941년 자본을 댄 인척과 정미소를 운영하며, 도정조합의 이사장에서 주하현 미곡배급조합의 이사장으로 선출되다.

1944년 일본의 패전을 예상하고,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귀국. 일제치하 공출이나 징용동원과 거리가 먼 인도적 지원의 적십자사 경남위원회의 군 서기로 근무하다.

1946년 해방 후 미군정으로부터 밀양공립농잠중학교의 행정관에 임명돼 학교 행정 업무를 전담하게 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아들 손순표가 의용군으로 징집되다. 대성사는 이 땅에서 전쟁으로 고통 받고 희생된 모든 이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다.

1952년 대성사가 기도를 시작한 49일째 되던 날, 아들이 살아 돌아오다.

1953년 회당 대종사와의 첫 만남을 계기로 발심하여 밀양 심인당에서 수행을 시작하다.
8월 27일 심인불교건국참회원 제헌 총회 교도 대표로 참석하다.
9월 30일 밀양 지방주사로 승진하여 재직 중이던 고등학교 교육공무원을 사직하다.
11월 2일 정사 후보로 임용되어 막 문을 연 서울심인당에서 교화에 나서다

1955년 시취試取 스승, 정사보正師補를 거쳐서 대성사는 정사로 승진하다. 당시 법호는 시당施堂으로 시당 정사로 불리다.

1956년 회당 대종사가 주석하던 서울 왕십리 심인당의 스승으로 봉직, 진각종 초대 사감이 되다. 사감은 후일 감사기관 ‘사감원査監院’으로 확대된다.

1957년 ‘심인불교 금강회 해인행心印佛敎 金剛會 海印行’ 출판사 설립, 밀교 경전을 직접 우리말로 옮겨 간행 업무를 시작하다. 정사로 승진 2년 만에 선교로 추대되다.

1958년 경전의 정수를 모아 ‘총지법장’을 간행하다. 또 ‘응화성전’을 내다.

1964년 종단 최고위직 총인總印으로 선출되다.

1971년 진각종의 모든 직책에서 스스로 물러나고, 100일 불공에 들어가다. 백 일째 되는 밤, 원정 대성사는 백발의 노인으로부터 ‘대승장엄보왕경과 준제관음법으로 교화하라’는
몽수를 받다.

1972년
6월 28일 마지막 남은 명예직인 진각종 기로원장 직을 내려놓고 물러서다. 서울 상봉동 지금의 정심사에서 수행을하며 칩거에 들어가다.
9월 9일 현밀원통성불심요집顯密圓通成佛心要集을 근거로 ‘비밀불교의 의궤’를 제정·공포하고 전수를 시작하다.
9월 29일 교주 비로자나불, 관세음보살 본심진언을 본존으로 모시는 뜻을 육합상으로 내보이다.
10월 17일 ‘총지교전’을 발간하다.
10월 29일 준제관음상의 조성을 시작, 육자 본심진언과 준제진언을 함께 행하는 것으로 수행의 상승을 도모하다.
11월 29일 충정로 현 관성사에 교도들 앞에서 불사와 의식의 뜻을 공식 밝히다.
11월 17일 종단 최초로 서울선교부에 육자진언 본존을 처음으로 모시다.
12월 24일 서울 선교부를 개설하고 정통밀교종단 불교총지종을 열다.

1973년 
6월 27일 제1회 중앙종의회, 원의회, 강공회를 개최하고, 종제를 확립하고, 초대 종령으로 추대되다.
7월 3일 용달과 설치를 지시하여, 전국 선교부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구매하여 나눠주기 시작하다.
10월 17일 종단의 공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재단법인 설립을 위해 불교총지원 창립총회를 개최하다.

1974년 
1월 9일 총지종 교도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교도맹약敎導盟約을 정하다.
5월 30일 문화공보부로부터 재단법인 불교총지원 설립허가를 받다.
6월 12일 성북선교부에 최초로 ‘불교총지종’ 현판을 내걸다.

1975년 
3월 28일 새해 불공으로 총본산 건설을 서원하고 역삼동 현 본산 대지를 매입하다.
4월 23일 한국 현대밀교 사상 최초로 삼매야계단三昧耶戒壇과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열어 전법관정수계를 하다.
11월 4일 교도들과 전국 스승들이 모여 본산 건물 상량식을 거행하다.
12월 14일 ‘오대서원’과 ‘회향서원’ 등 찬불가를 작사하여 불공과 의식에 도입하다.
12월 15일 모든 경전을 통불교적으로 직접 편찬하여 ‘불교총전’을 발간하다.

1977년 
5월 22일 소의경전 ‘불설대승장엄보왕경전’ 4권과 ‘대승이 취육바라밀다경’ 전10권의 한글 번역을 완성하다.
5월 25일 소의경전 ‘밀교장경’을 직접 번역하여 간행하다.
12월 27일 총본산 마당에 성불탑을 세우고, 총지사 2층 서원당 불단을 개설하다.

1979년 4월 26일 총지종 제2대 종령으로 추대되다.

1980년 7월 18일 종정 전반을 록정 정사에게 맡기고 제자들에게 밀법 홍포의 대원을 부촉하다.

1980년 9월 8일 세상의 인연 74년을 끝으로 열반적정의 세계로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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