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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생사 윤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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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0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5-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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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박희승 필자법명 - 필자소속 불교인재원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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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5-16 12:09 조회 1,0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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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로 여는삶 (9회)

혼란스러운 생사 윤회 문제

삶과 죽음의 생사(生死) 문제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세속에서도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부귀영화가 보장된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 수도하신 뜻도 여기에 있지요. 그러니 생사 문제의 해결은 불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속에서도 생사는 실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생(生)이란 태어남이고 곧 삶입니다. 태어나 산다는 것은 곧 생계를 이어야 하고 늙음과 병과 죽음으로 가는 길이죠. 삶은 의식주와 직결된 사회 경제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근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삶은 고해(苦海)라 하셨지요.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길은 깨달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하는 가르침으로 불교를 제시한 것이죠.


생사윤회를 긍정하는 생멸 연기관


근래 우리 불교계에서 이 생사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주장이 너무나 달라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혼란이 적지 않습니다. 즉, 초기경전을 중심하는 남방불교 수행자들은 생사윤회를 불교의 핵심이라 주장하고 이를 부정하면 불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특히 정신과 전문의로 위빠사나 수행자로 유명한 어떤 분은 전생 5생과 내생 5생을 관하는 수행을 말하기도 합니다. 즉, 남방의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생사윤회를 긍정하고 반복하면서 세세생생 닦아 나아가 마침내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해탈한다는 깨달음의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생불멸의 중도 연기관


다른 한편 대승불교, 특히 선종에서는 생사윤회를 죽은 이후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지금 이 순간 한 생각이 나고 죽는 것도 생사윤회로 보고 단박 깨치는 해탈의 길을 제시합니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반야심경에는 부처님이 깨달은 법은 “불생불멸”이라 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는 “태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다”고 말하지요.
또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금강경에서는 “과거의 마음도 없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에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생사가 있고 윤회도 있다고 보는 것은 분별의 착각 세계이고 불교의 해탈 세계는 생사가 하나고 과거와 미래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사윤회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 상당히 다릅니다. 
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성철스님도 백일법문에서 생과 사를 둘로 나눠 다르다고 보는 것은 허망한 분별이고 본래는 하나라 말씀하십니다. 그 근거로 초기경전인 초전법륜경에서 꼰단냐(교진여)가 깨치고 “집법(集法)이 곧 멸법(滅法)이다”라 말하자 부처님께서 “꼰단냐는 깨달았다”고 인가하신 대목을 제시하십니다. 즉, 사성제의 집이 곧 멸이라 말씀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자들과 대승의 선 수행자들은 똑같이 불교를 말하고 불교의 세계관이 연기라는 것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연기를 전혀 다르게 보고 해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방불교에서는 연기를 생(生)하고 멸(滅)하니 연기한다는 생멸연기를 말합니다. 대승과 선에서는 불생불멸의 중도연기를 말합니다. 생과 멸이 다르게 보이나 그것은 현상일 뿐이고 본질은 생도 연기고 멸도 연기이니 하나라는 것이죠.
이렇게 보니 같은 불교를 말하고 연기를 말하지만, 그 해석은 상당한 인식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불교를 공부하는데 혼란이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금 우리 교단은 불교의 연기관과 생사윤회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심도있는 연구를 통하여 바른 지침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방치하고 불교가 널리 전해지길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가 아닐까요? 어찌 보면 지금 한국불교의 혼란은 이런 문제를 바르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정견이 더욱 더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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