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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행(修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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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11-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생활법문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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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11-05 15:01 조회 1,5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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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행(修行)
실천이 곧 수행, 세 가지 공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 ... 불교 수행에는 4가지 과정, 신·해·행·증(信解行證)의 단계

지난 호에는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설하시고 말씀하신 가르침을 우리 중생들이 듣고, 배우고, 실천하는 행하는, 종교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설하신 가르침을 ‘근본교설’이라 하고, 그 가르침대로 행하고, 실천케 하는 말씀을 ‘수행교설’이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존재에 대해 설하시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일체 존재의 이치와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설하셨는데요, 이를 수행교설이라 합니다.

이론에 대한 내용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실천이 있게 마련인데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불교의 수행,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수행(修行)의 글자를 보면, 닦을 수(修), 행할 행(行)입니다. 즉 닦아서 행하는 것으로서 실천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닦고 행하느냐? 가르침대로 닦고 행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부처님의 가르침, 교설을 몸과 마음으로 닦고 행하는 것,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닦느냐? 부처님을 말씀을 듣고(보는 것까지 포함), 그리고 이를 깊게 사유하고, 실제로 닦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문사수(聞思修)라고 합니다. 

불교수행의 3가지 요소이자 3가지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산스크리트로 pratipatti(쁘라띠빠띠)라고 하는데요, 행한다,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행함, 실천이 곧 수행입니다. 무엇을 행하고 실천하는가 하면, 수행의 내용은 바로 계정혜(戒定慧)입니다. 이를 삼학(三學)이라 하는데요, 세 가지의 공부라는 뜻으로,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입니다.

계학(戒學)은 계를 지키는 공부입니다. 계는 심신을 조정하고, 심신에 대해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이를 방비지악(防非止惡)이라 합니다. 그릇됨을 막고 악을 고치는 것이 계의 본래 뜻입니다. 그렇다면, 실생활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계는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삼귀의계 오계, 팔재계, 십선계, 출가자는 250계가 있습니다. 이 모든 계를 줄여서 말하면, 몸과 입과 마음(뜻)을 청정히 하는 것이 계(戒)입니다. 이것이 수행의 핵심입니다. 실생활의 예를 든다면, 거짓말, 악한 말, 욕설, 이간양설, 험담, 꾸미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심신을 잘 다스리고, 자기감정을 잘 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학(定學)입니다. 선정에 드는 공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앞의 계학을 통해서, 계를 지키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공부입니다. 계를 통해 몸과 마음이 조정되고, 이러한 조정을 반복함으로써 일상에서도 선정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면, 모든 법의 참다운 상(相)을 통찰하게 됩니다.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혜는 선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가 혜학(慧學)입니다. 지혜를 증득하는 공부입니다. 지혜 가운데 지(智)는 아는 것이고, 혜(慧)는 세상이치를 명석하게 분별 판단하여 일체존재의 실상을 훤히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에서 지(智) 보다 혜(慧)가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삼학을 통해서 얻는 지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를 증득함으로써 생로사(生老死) 가운데 일어나는 일체의 고통과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이를 열반이라 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열반은 지혜의 증득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수행의 최종 목적, 종착역은 깨우침이자 지혜의 증득이며, 또한 고의 소멸, 열반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수행에는 4가지 과정, 단계가 있는데요, 이를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 합니다. 신(信)은 독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오, 해(解)는 바른 이해, 깊은 헤아림을 말하는 것으로, 해(解)가 없는 믿음은 광신(狂信)이나 맹신(盲信), 미신(迷信)이 되는 것이니 바른 이해가 필수입니다. 바른 이해와 깊은 이해 속의 믿음이라야 확신(確信)이 되는 것입니다.

행(行)은 바로 수행, 실천을 말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강하고 깊은 이해가 있다고 한들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공염불(空念佛)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론 뒤에는 실천, 행함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行)이 있음으로써 증득이 있게 됩니다. 이를 증(證)이라 합니다. 따라서 증득이라는 것은 문사수(聞思修)와 계정혜(戒定慧), 신해행(信解行)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공부를 끊임없이 행하는 것을 정진(精進)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어떤 수행법을 제시하셨을까요? 수행법은 교설의 내용에 따른 수행, 방법에 따른 수행, 시대에 따른 수행 등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교설의 내용에 따른 수행으로는 사성제(四聖諦)의 진리에 입각하여 도성제(道聖諦)로서 팔정도(八正道) 수행이 있고, 열 가지의 바른 삶, 생활법인 십선업(十善業) 등이 있으며, 방법에 따른 수행으로는 진언염송, 참선, 간경, 독경, 사경, 염불, 절 등이 있고, 시대에 따른 수행교설로는 초기불교시대에는 37도품이 있습니다. 이를 37조도품, 37보리분법이라고 하는데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37가지 수행법입니다.

대승불교에 와서는 육바라밀 수행으로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바라밀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경전에는 가르침과 교설에 따라 많은 수행법들이 설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수행을 해야 하는 걸까요? 수행의 이유와 목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출가 동기와도 맥을 같이 하는데요,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체의 고통을 멸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출가를 하셨고, 6년 수행을 끝으로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선정에 드시어 우주삼라만상의 참모습과 이치를 깨달으시고 고(苦)의 소멸과 함께 부처를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도 수행을 통해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체 고통과 괴로움을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를 병들게 하고 악업의 근원을 이루는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제거하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삼독심은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요, 고통의 원인입니다. 고통을 소멸하는 길은 바로 이 삼독심을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앞의 삼독심과 고통을 소멸하는 그 자리가 바로 해탈 열반의 자리입니다.

네 번째는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미혹(迷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근원은 삼독심이며 무명 또한 고통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명을 멸하고 타파하기 위해서 지혜를 닦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지혜를 닦는 그것이 곧 수행이며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수행은 지혜를 증득하는 것이며 지혜의 증득으로 고를 멸하게 되는데, 고의 소멸이 곧 무명을 타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섯 번째는 앞의 네 번째와 바로 연결되는 것으로, 제법실상(諸法實相)에 대한 이해와 자각으로서, 지혜의 증득을 위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수행을 통해 현실생활에서 우리는 악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지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는 이유로서, 여섯 번째는 악업(惡業)을 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제악막작(除惡莫作), 방비지악(防非止惡)이라고 합니다. 

모든 악함을 짓지 아니하고, 나쁜 것은 막고 악한 것은 그친다는 것입니다. 수행의 이유와 목적이자, 수행의 내용이며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행할 수 있는 수행이 무엇일까요?

수행은 출가자의 전유물도 아니오, 산속 깊은 곳에서 도 닦는 것만이 수행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이 수행이며, 삶 자체가 곧 수행생활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전부 수행인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일하고, 저녁 먹고, 잠자는 일입니다. 그 속에서 자신을 개선시키고, 발전시키는 과정이 곧 수행입니다. 이를 통해 정신적 성숙, 내면적 성숙을 이루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리고 내면적 성숙과 함께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화내지 않고, 배려와 이해, 칭찬과 응원을 보내는 것이 곧 수행입니다. 

생노사(生老死)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평온을 얻어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 생활 가운데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와 참모습을 깨쳐서 대지혜(大智慧)를 체득하시기를 서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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