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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쫑카빠 롭상 닥빠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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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9-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정성준 교수의 밀교 인물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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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교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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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9-02 14:35 조회 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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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쫑카빠 롭상 닥빠 (上)

티베트 불교를 생각하면 누구나 달라이라마를 먼저 떠올린다. 또한 티베트 불교는 나란다마하위하라를 계승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나란다대학은 대학 대신 마하위하라, 즉 대정사(大精舍)라는 말로 불리곤 한다. 학제와 사상, 철학, 도서관의 체계는 대학이란 이름을 붙이기에 부족하지 않지만, 삼계를 주재하는 불조의 전승과 밀교의 경지는 학문 이상의 것으로서 대학이란 말로 감당하기 어렵다. 


마하위하라는 석가모니 붓다 시대 이후 삼보와 삼장, 전승과 깨달음이 온전했던 교단의 역사를 가장 잘 보존한 말이다. 티베트 불교는 구역시대 닝마빠 이후 신역시대 까규빠, 사꺄빠, 까담빠, 조낭빠가 생기고, 이후 까담빠로부터 신까담빠가 나와 이것이 겔룩빠가 되었다.

겔룩빠의 종조 쫑카빠 롭상닥빠(1357-1419)는 1357년 동북 티벳 암도의 쫑카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싱사아최, 아버지는 루붐게라고 하였다. 탄생기와 더불어 여러 이적이 전해지는데, 그중 한 가지는 쫑카빠 탄생 시 탯줄에서 피 한 방울이 땅에 떨어져 이로부터 백단향목의 싹이 자란 것이다. 


이 나무는 문수보살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훗날 쫑카빠를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여기게 된 인연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 자리에 불탑을 세웠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점차 건물이 들어서 1583년 제3대 달라이라마 소남갸초는 이곳에 꿈붐사원을 조성하였다.

쫑카빠는 3살 때 제4대 까르마빠 뢸빼돌제(1340-1383)로부터 오계를 받고 이름을 꿍가닝뽀라고 하였다. 8세에 까담빠의 스승 최제된둡린첸으로부터 사미계를 받고 롭상닥빠라 하였는데, 이 스승은 위대한 밀교승으로 쫑카빠의 어린 시절부터 관여하여 모든 공부의 기초를 닦았다.


이미 어린 시절 많은 밀교관정을 받았고, 7살 때 아띠샤와 금강수의 환영을 경험하고 많은 스승들과 대화하는 등 남다른 근기를 보여주었다. 16세때 고향을 떠나 우창지방에 유학하였다. 여기서 50인의 불교학자와 공부하였고, 이때 중관, 유식, 인명 등 불교논서의 중요한 과목들을 대부분 수학하고 관련 논서들을 섭렵하였다.

중요한 수학의 여정 가운데 현교의 경우 사꺄빤디따 꿍가곌첸(1182-1251)과 부뙨린첸둡(1290-1364)의 영향은 불교철학과 논리학을 강조하는 겔룩빠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사꺄빠의 렌다와 쇤누로되(1349-1412)와 까담빠의 상뿌의 학풍이 큰 영향을 주었다. 


렌다와 쇤누로되는 중관학파의 귀류논쟁 철학으로 유명하였다. 감명을 받은 쫑카빠는 스승에게 간곡한 예찬의 게송을 올렸는데 스승은 오히려 쫑카빠가 게송을 받을 자격이 있다하여 되돌려 주었다. 밀교의 경우 어릴 적 공부했던 된둡린첸이 중요하며 비밀집회 딴뜨라에 대해서는 부뙨린첸둡의 제자인 큥뽀레빠쇤누 소남, 챠끄라상와라딴뜨라에 대해서는 샤꺄파의 라마인 소남곌첸뻴상뽀(1312-1375)로부터 관정을 받았다. 쫑카빠는 무상유가딴뜨라뿐만 아니라 4부딴뜨라 전체에 대해 고루 수학을 했다. 


닝마빠의 족첸은 둡첸남카곌첸(1326-1401)으로부터 수학했다. 쫑카빠는 20대 초반 불교철학에 대한 탁월한 견해에 도달하여 반야학을 주제로 「금만선설(金鬘善說, legs bshad gser phreng)」이라는 책을 저술하였고 평생 동일한 주제로 저술을 계속해 18부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쫑카빠의 수학과정은 현교와 밀교를 함께 공부하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종카빠와 문수보살의 특별한 관계가 조성된다. 쫑카빠는 초기 중관학자인 빠오돌제에 의지해 공부하였는데 빠오돌제는 문수보살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금만선설」을 저술할 때도 빠오돌제를 통해 문수보살에게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쫑카빠는 문수보살의 환영을 다시 경험한 다음 문수보살과 직접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문수보살로부터 와즈라바이라와 같은 밀교본존의 관정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종카빠는 무착과 용수보살을 친견하고 다른 밀교본존의 관정도 받게 되었지만, 동시에 비판도 없지 않았다. 

쫑카빠는 약간의 가르침을 펴기도 했지만 깊은 단계의 수행을 위해 1392년 쟈델수도원에서 8명의 제자와 함께 수행에 들어갔고 7년후 욀카최룽으로 다시 옮겼다. 밀교수행으로서 전행도 소홀치 않아 함께 3백5십만회의 오체투지를 하였다. 쫑가빠는 징지로 여행하여 여기서 전통대로 거대한 미륵불상을 복원하였다. 1398년 쫑카빠는 큰 깨달음을 얻고 귀류논증파의 조사들이 모인 환영을 보고 중관철학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얻었음을 확신하였다. 


이후 쫑카빠는 「십이지지연기예찬」이라는 게송을 지었다. 더불어 쫑카빠는 저술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의 오도 직후 남긴 12지연기에 대한 찬탄은 그가 섭렵한 교학과 밀교수행이 석가모니붓다의 근본가르침인 연기설에 모아진다는 중요한 교훈을 후손에게 전하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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