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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둠 속에서 법의 등불을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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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9-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연재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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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9-02 14:23 조회 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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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종조 원정 대성사 일대기 (1회)

세상의 어둠 속에서 법의 등불을 지키다
1907년 경남 밀양 일직 손 씨 26세 손으로 태어나, 대성사 성품, 선대의 성정이 혈통의 인과로 이어져


제 1장 시절인연


탄생_①


부처님의 가르침은 초전법륜 이래 한 번도 멈춰 흩어지지 않았으나 시절 인연에 따라 드러나거나 감춰졌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 그 법의 등잔을 지킨 이들에 의해 고해를 밝히는 빛이 되어왔다. 부처님이 세상을 위해 가르쳐 생활 속에서 불법을 어긋나지 않게 실천하는 밀교의 교법은 이 땅에 전해진 후 오래도록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려 이후 오래도록 길은 끊어지고 가르침은 잊히고 말았다. 세상의 고난을 구하고 생활이 온전히 불법이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든 삶의 순간에서 구현되기를 바란 한 사람의 원력에 의해 길은 다시 이어지고 혼란과 고통의 세상에 밀교의 법이 다시 드러나게 됐으니, 원성 대성사의 출현으로 법의 등불은 세상을 다시 비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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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사는 1907년 1월 29일 경남 밀양에서 일직 손 씨 26 세손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손기현, 모친은 이근호 님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지어 호적에 올린 이름은 민호(珉鎬), 빛나는 옥처럼 단단하게 세상에서 가치 있고 이롭게 쓰이는 사람이 되라는 바람을 담았다. 성년이 되어 관례를 치른 후 얻은 이름인 자는 대련(大鍊)으로 훗날의 쓰임을 위해 시대와 역사로부터 큰 단련을 받을 운명을 암시한다. 총지종을 일으킨 후에는 자를 정우(禎佑, 또는 楨佑)로 삼았으니 사바세계 중생들에게 붉은 해처럼 도움을 주리라는 염원을 읽을 수 있다. 대성사의 법호는 원정(苑淨)이시니 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호이다.

대성사가 태어난 곳은 일직 손 씨 집안의 근거지는 경상북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 일명 죽서(竹西) 마을. 다죽리란 차밭이 있는 다원 마을과 대나무가 많은 죽남 마을에서 한 자씩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차나무와 대가 많은 곳이다. 차는 씨앗 하나가 떨어지면 일대를 차나무로 덮고 대는 뿌리 하나가 온 산을 울창한 대숲으로 만든다. 그런 인과대로 다죽리 일대는 밀양에서도 풍요롭고 인물 많기로 유명하다. 


밀양 시내에서 울산 방면으로 가다가 얼음골과 표충사로 갈라지는 곳에 산외면이 있다. 재약산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풍부한 물길이 마을 바깥을 흐르고 멀리 재약산 천황봉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마을 뒤편으로 육화산이 있어 완만한 능선이 다죽리 일대로 흘러 떨어지는데, 양명한 고장으로 알려진 밀양에서도 다원 일대는 풍수지리 면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전해진다. 다죽리는 예부터 살기에 편안하고 풍요로우며 큰 인물이 나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


수량이 풍부한 천을 끼고 펼쳐진 비옥한 들판 덕에 쌀과 밭작물이 풍부하며, 인근 재약산과 종남산, 가지산과 영취산, 그리고 북암산과 백운산 등지에서 나는 산채가 사철 생산되는 곳이다. 다원 동산의 차밭에서 딴 차는 문중의 차례를 올릴 때나 인근 통도사와 표충사에서 헌다 공양으로 긴요하게 쓰이고 차와 시를 곁들인 선비들의 시회에도 값지게 사용됐다. 대나무는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드는데 요긴한 물건이라 다죽리는 밀양의 알곡 같은 곳이다. 한마디로 풍광이 좋고 먹을 것이 풍부하며 인재를 키우기에 적합한 땅이다.


다죽리에는 천변을 따라 심어 둔 소나무밭이 절경을 이룬다. 마을을 감싸고 펼쳐진 송림은 풍치가 뛰어나 지금도 밀양의 자랑으로 꼽히는 곳이다. 대성사가 어린 시절 그 송림 사이를 뛰며 흐르는 물과 구름과 바람으로 세상과 만났을 것이다. 유년기의 경험과 기억은 평생 사라지지 않아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겨 놓는다. 후일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었지만 죽서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말없이 세상사를 관조하고 침묵 속에서 꿰뚫던 성품의 기틀이 만들어졌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죽리는 예나 지금이나 초연하고 평안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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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원정 대성사 생가터. 1990년 12월 2일 촬영본


사람의 삶은 흔히 인연의 소생으로 이야기한다.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인연을 짓고 허물며 살아간다. 출생의 인연이란 그의 가문이나 부모를 인으로 삼아 타고나며, 당대의 사회와 시대상과 연을 맺게 된다. 대성사가 일직(一直) 손씨로 태어난 것은 운명적인 인연의 출발인 셈이다. 요즘의 표현에 따르면 유전자에 새겨진 수많은 정보들이 성격과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직 손씨는 흔히 안동(安東) 손씨로 칭한다. 고려 시대 복주(福州) 땅인 안동 일직면에서 중시조가 가문의 번성을 이루었다. 손씨들의 성정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일화가 있는데, 대성사의 성품에 배인 혈통의 인과를 짐작게 한다. 


일직 손씨의 4세 조상인 복천 부원군 손홍량(福川 府阮君 孫洪亮)은 고려 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후 승승장구하였다.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공민왕 때 마침 홍건적이 침입하여 왕은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 향리에 머물던 손홍량은 피난길의 왕을 마중하여 관직을 벗어 평민이 되었음에도 난리를 수습하고 국운을 일으킬 정책을 건의하였다. 공민왕은 크게 감탄하여 그 충직하고 곧은 절개를 치하하며 감탄했다. 


“그대는 한결같이 곧은 사람이다.

(子誠一直之人)”

본관인 일직과 하나같이 곧은 성품이 일치함을 드러내 탄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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