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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행을 닦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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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8-01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내 눈높이로 읽는 소의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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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8-04 14:21 조회 1,5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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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대일경_주심품 (1회)

진언수행을 닦는 지혜
교리와 실천 부분으로 총 7권 36품, 범부 중생이 아니라 보살 대상의 설법

말법(末法)시대, 부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은 적고 세간의 가치를 숭상하며 수행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온갖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우리를 더 혼란케 합니다. 이에 진정 우리들을 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여 제도(濟度) 해탈케할 법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랜 옛날로부터 선지식들이 그러했듯 경전에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종단의 소의(所依)경전부터 읽기를 제안합니다. 참고로 저는 전문적으로 경전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학문적 이해는 부족합니다. 순전히 ‘수행적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는 관점으로 경전을 내 눈높이로 읽은 것이기에 여러 다른 견해와 관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 선직식들의 다양한 해석과 비판이 더해져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대한 많은 관심이 종단의 수행 풍토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죽은 가르침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 삶을 더 의미 있고, 생기 있게 만드는 살아있는 지혜로 우리 삶에 가지(加持)하기를 바랍니다. 필자 주


소의경전


총지종의 소의경전은 『대승장엄보왕경』,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 『대일경』, 『금강정경』이 있고 여기에 소개할 경전은 『대일경』 「주심품」입니다. 

한역 『대일경』은 중국에서 밀교를 전했던 선무외 삼장이 서기 724년에 당나라 낙양 대복선사에서 제자인 일행스님의 도움을 받아 번역하였습니다. 모두 7권 36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교리부분과 실천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주심품」은 대일경 제1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일경』의 교리부분에 해당합니다. 우리 종단에서 『대일경』 「주심품」을 화령 정사가 한글로 번역하여 배포한 것이 『대일경: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입니다.


주심품


『대일경소(大日經疏)』에서 선무외 삼장은 원래 「주심품」의 제목이 두 개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입진언문주심품(入眞言門住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수진언행품(修眞言行品)」이라고 했습니다. 「입진언문주심품」은 ‘진언문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뜻이고 「수진언행품」은 ‘진언수행을 어떻게 닦아야 하나?’는 것입니다. 즉 「주심품」은 ‘바른 진언수행이란 이렇게 닦는 것이다.’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심품」을 통해 올바른 진언수행을 닦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대일여래(박가범) 부처님께서 금강법계궁에 머무르고 계실 때 여래께서는 보살들에게 법문을 설하기 위해 보살을 몸으로 사좌자를 삼고 앉아 계셨습니다.” 


대일여래는 형체가 없는 진리의 부처님이시기에 마땅히 구해야 할 중생이 있으면 그들과 같은 음성을 가지고 그들의 모습으로 나타나 제도하십니다. ‘보살의 몸으로 사좌자를 삼고 앉아 계셨다’는 것은 이후의 설법의 대상이 보살들임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이 『대일경』은 범부 중생이 아니라 보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법이기에 수준이 높고 기초적인 설명이 없어 어렵습니다. 


법문의 이해를 돕는 사전지식


1) 마음: 알아지는 작용, 알아지는 현상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출가하셔서 모든 괴로움을 극복하시고 무명의 수레바퀴를 멈췄습니다. 어떻게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었을까요? 우리의 괴로움은 모두 앎에서 생깁니다. 이 앎을 불교에서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에서 끊임없이 앎이 생깁니다. 눈과 형상이 만나면 앎(안식:眼識)이 생깁니다. 귀와 소리가 만나면 앎(이식:耳識)이 생깁니다.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몸의 느낌, 마음과 느낌, 생각, 심리현상 등이 만나면 앎이 생깁니다. 앎에서 괴로움이 생깁니다. 나에게 알아지지 않는 것에서 괴로움이 생길 수 없습니다. 이 앎의 보편적 성질이 바로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입니다. 끊임없이 생겨난다고 하여 ‘무상’, 이렇게 진행되는 앎의 과정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겨난다고 하여 ‘무아’, 원인과 결과로 생겨난 앎이 무의미하고 집착할 것이 못된다하여 ‘고’라고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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