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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믿음과 과보를 바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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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0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7-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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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박희승 교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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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7-08 15:56 조회 1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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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박희승 교수의 불교로 여는 삶 (4회)

불교의 믿음과 과보를 바로 보자
믿음이 맹목적일 때 악업을 짓고 불행에 빠지기도 ... 수행의 생활화로 남들이 잘되게 돕는 삶을 살아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라도 막상 생활 현실에서 충격을 받으면 당황하고 신심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믿었던 스님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 독실한 불자에게 배신당할 때, 입으로는 남을 도우라 하면서 자기 이익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불자를 볼 때 우리는 불교가 무엇인지, 불자가 왜 저럴까 하며 혼란이 오기도 한다.


옛날에도 그런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고려시대 백운선사가 지은 「직지(直指)」(동국역경원)에 보면, 선종의 제19조 구마라다 존자가 어느 날 사야다 거사가 찾아와 이렇게 문답한 대목이 나온다.(아래 문답)


실제 우리 주변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불행해지고 사업이 망하는 경우를 보면, 불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누구나 겪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구마라다 존자는 인과(因果)는 그림자가 본체를 따르듯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으니 의심하지 말라 한다. 또한 과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삼세에 걸쳐 반드시 받는다고 한다.


믿음에서 정견과 수행으로 흔들림 없이 

그럼에도 우리는 눈앞에 바로 인과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반대의 현실에 직면하면 불교에 믿음이 흔들린다. 이것은 비단 불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코로나사태를 겪으며 일부 교회가 당국의 방역지침을 무시하고 기도 집회를 열어 확진자가 속출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를 불신하는 이들이 급증하였으니 말이다. 이것은 자기가 믿는 종교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종교의 믿음이 맹목적일 때 그 믿음은 악업을 짓고 그 과보를 받아 불행에 빠지게도 한다. 


그러니 불교를 바르게 믿는 불자라면,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을 믿음과 동시에 바른 불교 공부를 통하여 정견(正見)을 세우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 절에서 불교 교리를 공부하면서 정기적으로 법문을 듣고 기도, 주력, 염불, 참선 등 자기에게 맡는 수행법을 정해 하루 5분이라도 매일매일 수행해야 한다. 불교의 믿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행을 생활화하면서 집과 직장에서는 남을 배려 존중하면서 남들이 잘되게 돕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처님은 나와 나의 것이 본래 없다는 것을 깨치고 생사의 괴로움을 멈추어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평생 걸식과 무소유의 삶을 사셨다. 나와 나의 것에 집착을 떠나면 대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끝없이 비워가면서 남을 돕는 이타행을 하면 기쁨도 배가 된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불교의 방대한 가르침에는 믿음과 기도도 좋지만, 이것만으로는 생사윤회의 고통을 멈출 수 없다. 우리 불자들이 정견을 세우고 바른 믿음과 행을 닦아 매일매일 정진해 나가야 한다. 그런 삶이라면 미래를 걱정할 것도 없고 과보를 두려워하거나 의심할 것도 없다. 오직 내가 지은대로 받는 것이니 어찌 의심과 두려움이 있겠는가?  



구마라다와 사야다의 문답


“우리 부모님은 오래 전부터 불교를 믿었지만 항상 병을 앓으셨고 하는 일도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웃은 오랫동안 백정 노릇을 하며 살고 있는데 언제나 건강하고 하는 일이 모두 잘 되고 있습니다. 그 집은 무슨 복이 있었던 것이고, 우리는 왜 이러는 건가요?”

“그것을 어찌 의심하고 있소? 선악의 과보는 삼세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오. 

보통 사람들은 항상 어진 사람이 일찍 죽고 못된 사람이 장수하며, 반역하는 사람이 길하고 의로운 사람이 흉하는 것만을 보고는 인과도 없고 죄와 복도 없다고들 하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따르되 추호도 어긋남이 없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오. 

백천만겁을 지나더라도 그것은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오.”

사야다는 이 말을 듣고 나자 의심이 단박에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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